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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 장모(37)씨에게 가을은 곱게 물든 단풍과 국화의 은은한 향기를 한껏 만끽하는 계절이 아닌, 그저 고통의 계절일 뿐이다. 날씨가 건조하고 서늘해지기 시작하면 나무들이 단풍 옷으로 갈아입듯이 무릎과 팔꿈치 등 몸의 여기저기에서 좁쌀 같은 발진과 하얀 각질이 겹겹이 나타나는 건선 증상이 심해지는 까닭이다.

삼성서울병원이 '세계 건선의 날'(29일)을 앞두고 24일 오후 2시 본관 지하 1층 대강당에서 건선의 예방과 치료법을 주제로 개최하는 건강교실에서 소개될 환자 사례다. 서울대 윤재일 명예교수와 서울아산병원 최지호, 건국대병원 최용범 교수 등의 도움말로 난치성 피부병 건선의 예방 및 치료법을 알아본다.

◇한 번 걸리면 재발 잦은 난치성 만성 피부병=건선은 다양한 크기의 붉은 발진 위에 은색 각질이 겹겹이 쌓여서 피부가 두꺼워지는 질환이다. 전 인구의 2∼4%가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정상적인 피부세포는 약 28일을 주기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 하지만 건선 환자의 피부는 이 세포 교체 기간이 너무 빨라서 죽은 세포가 미처 떨어져나가지 못하고 쌓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에 발생하는데 주로 팔꿈치와 무릎, 두피, 허리 부위에 나타난다. 두피와 사타구니 외엔 대체로 가렵지도 않은 것이 특징이다.

피부에 작은 좁쌀알 같은 발진이 생기면서 그 위에는 인설이 겹겹이 쌓여 나타나며 점차 발진이 서로 뭉치거나 커지면서 퍼지는 것을 '판상형'이라고 하며, 이 형태가 가장 흔하다. 건선에는 이밖에도 고름 주머니가 생기는 '농포성' 건선, 전신 피부가 붉어지면서 피부가 쌀겨 껍질처럼 떨어져 나가는 '박탈성' 건선 등 여러 형태가 있다.

발병 원인은 아직 분명치 않다. 의학계는 면역체계 이상으로 나타난다고 본다. 다만 건조한 기후, 피부 상처, 스트레스, 세균 감염, 고혈압 약이나 항우울제 같은 일부 약물에 노출됐을 때 자주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늦가을과 겨울철의 건조한 날씨는 건선을 악화시키는 최대 위험인자다. 따라서 건선 환자들은 실내 온도와 습도를 20∼22도, 40∼60%로 항상 유지하고 실내 공기도 자주 환기해줘야 한다.

피부를 자극하는 일도 좋지 않다. 운동 중 다치거나, 칼에 베이는 일, 심하게 긁는 일, 목욕 시 때 밀기도 피한다. 또 비누 대신 오일이나 비누 대용품을 사용하고, 샤워 후에는 꼭 보습제를 발라준다.

세균 감염으로 편도선염이나 급성인후염(목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는 상기도 감염증을 일으키는 연쇄상구균이 건선을 유발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술, 담배, 맵고 자극적인 음식, 인스턴트 식품 등도 건선을 악화시키므로 피한다. 우유, 요구르트, 치즈, 버터 등의 유제품 섭취도 제한하는 것이 좋다. 대신 비타민이 풍부한 과일과 채소, 물을 수시로 많이 섭취하는 것이 좋다.

◇부족한 햇빛 대신 자외선요법 치료 효과=건선의 치료는 크게 약을 바르는 국소요법, 광선을 쪼이는 광치료법, 약을 먹는 전신요법 등 약물 복용과 광선치료를 함께 시행하는 복합요법이 사용된다.

특효약은 '햇빛'이다. 햇빛 속 자외선의 특정 파장대가 건선 증상을 완화시켜주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햇빛을 너무 많이 쪼이면 기미 등 다른 피부병이 부작용으로 나타나게 되므로 조심해야 한다.

광(光)화학 복합요법은 건선 증상이 전신에 퍼져 있을 때 필요하다. 특수 약물을 바르거나 복용한 다음 자외선 광선을 주기적으로 쬐는 치료법이다. 등, 팔, 다리, 무릎처럼 신체 일부분에만 건선 증상이 있는 경우에는 부분 자외선 또는 엑시머 레이저로 투사하는 방법이 효과적이다.

건선은 난치병이다. 따라서 완전히 치료하기란 쉽지 않다. 흔히 피부과 의사들이 건선 치료 시 무리하게 완치를 위한 치료보다는 증상 완화와 재발 방지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다.

특정 치료법을 고집하는 것도 좋지 않다. 각 치료법의 부작용을 피해 적절히 병행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건선은 치료 시 특히 환자 개인의 인내심과 끈기를 필요로 하는 병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건선 유발 요인을 피하는 식생활도 중요하다. 자외선 치료와 함께 매끼 현미나 통밀, 호밀, 콩 등의 잡곡이 함유된 밥과 항산화제가 풍부한 녹황색 야채와 과일을 합해 1일 600g 이상 섭취하면 인체의 면역기능을 정상화시켜 건선 치유에 많은 도움이 된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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