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뉴시스】김에리의 '80일간의 북유럽 일주' < 33 >
우산도 없이 비를 줄줄 맞으며 나아가는 길. 다행히 지도도 볼 줄 알고 방향감각도 있는데(이 둘 다 없는 여성이 꽤 있다) 지도를 보고는 거리까지 가늠하기가 영 힘들다. 기차역이 항구변과 붙어있길래 지도상 크루즈터미널 쪽에 있는 팝·록 국립센터 록헤임(Rockheim)을 가보려다 도저히 길을 찾지 못해 중심가쪽으로 방향을 튼 터이다.
북유럽 건물의 특징이 처마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빗물의 방해로 고개도 쳐들 수 없어 푹 젖어버린 지도도, 벽에 붙어있을 거리명도 볼만한 여건이 도저히 안 된다. 버스정류소 부스에 잠시 몸을 피했다가 여행안내소를 찾긴 찾았으나 이른 일요일 아침인지라 당연히 문이 닫혀있다. 그래도 빗줄기를 뚫고 계속 걸어가다보니 트론헤임의 가장 큰 관광명소 니다로스 대성당(Nidarosdomen)이 떡 나타난다. 비에 맞아 들고 보던 지도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누더기가 됐는데, 티켓부스 쪽에 다행히 새 지도가 있어 구할 수 있었다.
성당 안에는 때마침 일요 아침예배가 열리고 있어 참석했다. 오래된 교회들 중 내부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는 곳들이 있는데 이곳도 사진 촬영 금지다. 비는 내리지, 어두운 가운데 색색깔 스테인드글래스가 만들어내는 오묘한 조명, 석조건물이지만 나무가 많은 지역답게 나무로 만들어진 가구들이 뿜어내는 오래된 나무 냄새, 촛불 타는 냄새들이 어우러지며 백일몽이라도 꾸듯 몽롱한 느낌이 들어 나홀로 현실과 유리된 듯, 수많은 관광객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북유럽은 모두 루터교회로 개신교인 데도 가톨릭적인 풍모가 여전하다. 신학생 티를 갓 벗은 보조사제가 사제복을 입고 영어로 가이드를 하는 것을 좀 지켜봤는데 아주 착해보이는 그 순수한 얼굴이 전혀 이국인 같이 낯설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여행 한 달이 넘어가니 이들의 얼굴에 익숙해진 탓도 있겠지. 신앙심이 사라진 시대, 절대자에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의지할 수 있는 그의 마음이 문득 부러워졌다.
우산이 없으니 불편한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떨어지는 빗방울에 위를 올려다볼 수 없어 대체 이 성당의 외양도 마음껏 감상할 수 없는데다가, 카메라 렌즈에 빗방울이 맺히니 사진도 찍을 수 없다. 나다로스 대성당은 길이 101m, 너비 50m, 높이 30m로 노르웨이에서 가장 큰 중세건물이다. 정면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상을 중심으로 54명의 성인 조각이 늘어서있는 장엄한 석조건물이다. 날 맑은 날 망원경이라도 들고 와 다시 자세히 보고픈 마음이 굴뚝같다.
노르웨이 제3도시 트론헤임은 이름 자체가 주는 느낌도 참 고급스럽지만 중세 노르웨이의 수도였던지라 천년고도다운 고풍스러운 느낌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전반적으로 핀란드의 고도 투르쿠와 비슷한 느낌이다. 역시나 투르쿠처럼 나무가 흔한 지역답게 목조건물이 많아 도시가 화재로 무너졌다가 재건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997년 올라프 트뤼그바손 왕 때 도시의 기초가 다져졌다고 하는데 지금도 왕의 대관식은 니다로스 대성당에서 이뤄진단다.
나란히 몰려있는 니다로스 대성당 입장료 60크로네, 대주교 궁전 박물관 60크로네, 왕권 상징물 전시(Crown Regalia) 80크로네인데 모두 다 들어갈 수 있는 올인원 티켓을 구입하면 120크로네다. 성당 첨탑 투어는 30크로네를 따로 내야하는데 안전문제상 한번에 참여할 수 있는 인원이 제한돼있어 금세 마감돼 올라가 볼 수 없었다.
아치를 지나 뒤쪽 마당으로 가 사방을 둘러싼 돌벽 건물중 하나에 들어서니 왕권 상징물 전시실이다. 1000년을 이어내려온 노르웨이 왕실의 상징인 왕관, 홀, 보주(寶珠), 칼 등은 대관식에 쓰이는 물건들이라고 한다. 현 국왕 하랄드5세의 대관식 장면 사진도 볼 수 있다.
오른쪽 돌벽건물에 나무 문 입구가 하나 보인다. 이곳이 박물관인가 해서 들어가보니, 여기는 시대별 군사·무기 전시실로 입장료는 없다. 밀리터리 아이템에 관심 많은 이들에게는 더할나위 없어 보인다. 대각선쪽이 대주교 궁전 박물관인데 1070년 세워진 나다로스 성당과 주변 건물들이 몇 차례에 걸쳐 붕괴, 재건되는 동안 발굴된 유물들이 전시돼있다. 지금의 대주교 궁전 건물이 세워지기 전 1991~95년에 12개국에서 온 120명의 고고학자들이 15만점에 달하는 유물을 발견했다는 설명이다.
압권은 나다로스 대성당에 쓰여졌던 중세 장식석들. 이 성당은 1531년 대화재 때 많은 벽이 무너졌고 이를 재건축하는 과정에서 장식석들을 그냥 가져다 썼는데, 1870~80년대 이 벽을 허물면서 다시 모습을 드러내게 됐다고 한다. 노르웨이인의 장인정신과 예술적인 측면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데, 굉장히 토속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하다. 교회 벽에 새겨졌다기에는 이교도적 영향을 받은 듯한 동물문양들도 투박한 듯 해학적이다. 감상 후 느낌을 묻는 미모의 여직원에게 이 얘기를 해주자 무척 좋아한다.
박물관 지하에서 대성당 재건축과 발굴, 복원 작업을 담은 비디오를 보여주는데 이것도 꽤 볼만하다. 외벽에 장식된 석조상들을 내레이션과 함께 자세히 보여준다. "돌리 파턴 성형한 것처럼 늘어진 현대적이고 유머러스한 얼굴 조각"이라는 설명에 관람객들이 동시에 자지러진다.
◇중국에 다녀왔다는 푸른눈의 아가씨
오후가 되니 비가 잦아들어 지도상 대성당 건너편에 있는 트론헤임 미술관에 가볼까 하고 나섰다. 마침 통통한 볼을 한 예쁘장한 소녀가 지나가길래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이 마주쳤다. 내가 남자였다면 이 아가씨를 따라 이곳에 정착하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푸른 눈이다. 마을아가씨에 반해 낯선 마을에 정착하는 외로운 나그네의 전설같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방향을 물었다. 역시나 내 경험치는 틀리지 않아 때묻지 않은 틴에이저들은 외국인에게 선입견 없이 친절하다.
조잘조잘 영어로 수다를 떨며 굳이 그럴 필요 없다고 하는데도 나를 미술관 바로 앞까지 데려다줬다. 그녀는 마침 대성당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던 참이었다. 어디서 왔느냐고 묻기에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야, 진짜 멀리서 왔구나"하고 감탄하며 바로 앞 건물을 가리킨다. 자신은 저 학교에 다닌다고 소개한다. 대성당에서 운영하는 학교라 예전에는 남자만 갈 수 있는 목사양성 신학교였는데 지금은 그저 남녀공학 고교가 됐다는 친절한 설명도 덧붙인다. 그러면서 자기도 내년에는 대학갈 나이라고 뻐기는 것이 귀엽다.
멀지 않은 미술관에 도달하니, 웬일 7월20일까지 재개장한다는 흰종이 하나만 떡 붙어있고 닫혀있다. 금발에 푸른눈을 한 천사같은 이 소녀는 마치 자기가 잘못이라도 한 듯 "왜 닫혔지"하면서 울상이 된다. 노르웨이 국민화가 뭉크 작품 등을 소장한 노르웨이에서 세 번째로 큰 미술관이라지만, 어차피 오슬로의 뭉크미술관에 갈 예정이니 크게 아쉬움은 없다.
바로 앞까지 데려다줘서 고맙다고 거듭 인사하니 그제서야 "사실은 나 중국에 여행 갔었거든. 근데 거기 사람들 영어를 하나도 못하더라"라며 눈이 부시도록 환하게 웃는다. 자기도 먼 이국에서 말도 통하지 않고, 길도 찾기 어려운 경험을 해본지라 역지사지가 된 것이다. 여행을 다녀보면 유독 친근감을 보이며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같은 여행자들이거나 현지인일 경우 낯선 나라에 여행을 많이 다녀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여행을 하는 동안 서울 거리에서 지나치며 봤던 몇몇 외국인 여행자들이 떠올랐다. 지하철 매표기 앞에서 '퍼킹 머신'을 외치며 열을 내던 미국인 청년들, 혹은 지도를 펼쳐놓고 방향을 가늠하지 못해 헤매이는 것 같던 외국인들. 고향과 멀어질수록 모든 것이 확연히 다르다. 그 미국인 청년들은 먼저 가격 버튼을 누르고 동전을 넣어야하는 매표기 사용법을 몰라, 동전을 먼저 넣으면서 계속 동전이 그냥 반환되는데 열을 내고 있었던 것이다. 상황을 뻔히 알고 영어를 알면서도 그들을 도와주지 못했다. 그냥 친절을 베풀면 되는건데 수줍음과 이국인 남성에게 먼저 호의를 베푸는 것이 혹시 오해를 낳을까 저어하는 복합적인 마음이었다. 처지가 바뀌고 보니 그때 그들을 도와주지 못한 것이 무척 후회가 됐다. 아주 오래 전 일인데도 내가 도움이 절실한 낯선 환경에 처하다보니 새삼 기억이 떠올랐다.
소녀와 헤어진 후 미술관 뒤쪽으로 가보니 한창 수리 중인 것을 볼 수 있다. 뒷마당에 외부 전시해놓은 조각상 몇 점 사진 찍고 국립장식미술관(노르덴피엘스케 쿤스트인두스트리무세움)으로 이동했다. 의상, 보석 등의 장신구와 도자기, 촛대 등 생활용품, 의자 등이 주요 전시품들이다. 1층 비상설 전시관에는 6월16일~9월16일 1900년대 중반 현대디자인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노르웨이는 북유럽 가구 디자인계에서 좀 소외된 편이라고 하더니 전시된 의자와 책상은 덴마크, 핀란드, 영국 등 해외 디자이너의 작품이 대다수다.
오전 내 비가 쏟아졌다지만 신기할 정도로 관람객이 없다. 나 혼자 전세라도 낸 듯 3층 구조의 미술관을 돌아봤다. 샘이 나는 것은 '일본 컬렉션'. 유럽의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준 일본 예술작품과 공예품들을 노르웨이에서는 유일한 것들이라며 전시를 해놨다. 화려한 기모노, 일본 무사 갑옷 등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역시 유럽에서는 일본문화가 극동 아시아의 대표적 문화처럼 여겨지나 싶어 질투심도 들고 씁쓸하다.
◇난민수용소 같은 초다인실 혼숙 호스텔
다시 기차역으로 돌아와 라커에서 오늘 하룻밤을 지낼 때 필요한 물건들만 빼내 배낭에 넣고 무거운 캐리어는 남겨두고 숙소로 향했다. 본래는 트론헤임 호스텔(Trondheim Vandrerhjem)에 묵을 예정으로 e-메일을 보냈더니 6월중순부터 2012년 하반기 내내 재건축을 할 것이라며(공사가 길어지는지 나중에 홈페이지를 보니 2013년 9월초에나 재개장한단다) 주변의 저렴한 다른 숙소를 추천하는 답변을 보내왔다.
유전에서 오일까지 펑펑 나와 세계 최고의 부를 자랑하는 나라인 데다가 겨울이 길고 눈도 많이 오는지라 여름철에 많은 공사들이 이뤄지고, 관광객 사정 봐줄 것도 아니다. 할 수 없이 NTNU(Norwegian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 학생들이 학생클럽 건물에 여름 한철(6월18일~8월11일) 운영하는 트론헤임 인터레일센터에 1박을 예약했다. 노르웨이를 통틀어 가장 저렴하다고 할 만한 단돈 200크로네(약 4만원)에 아침까지 준다. 몇몇 호스텔에 싼 가격으로 한 방에 수십명씩 재워주는 초다인실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이곳도 그런 곳들 중 하나다. 베르겐 인터미션은 60여명을 한 방에 몰아넣는다고 하고, 코펜하겐 슬립인헤븐은 3층 침대까지 갖춰놓고 있다고 한다.
오후에 되니 기차역 렌터카 사무소가 문을 열었길래 물으니 버스터미널과 타야하는 버스번호를 친절하게 알려줘서 버스를 타고 인터레일센터 앞에 도착했다. 둥근 탑처럼 생긴 낮은 붉은 벽돌건물이다. 짐을 질질 끌고 정문으로 갔더니 무거워 보이는 철문은 잠겨있고 다른 편 입구로 와야한다는 A4 크기 흰종이 한장이 붙어있다. 이들은 대형 안내판은 미관을 해치는거라고 인식하고 있는 게 확실하다. 어디에 가나 이런 식이다. 현지 언어도 모르는 상태에서 영어 안내문은 이렇게 코딱지 만한 활자로 프린트해서 붙여 놓는게 다이니, 낭비하게 되는 활동거리가 너무 많다. 그래도 미리 숙소를 다 예약하고 와 잘 곳이 없어 헤매는 일이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그랬다면 더 진이 빠졌을 터이다.
다시 정문계단을 내려왔는데 다른 편이라는게 도저히 어디를 말하는 건지, 지칠만큼 지쳐 어느 쪽으로 가야하는 건지 가늠도 안 된다. 결국 건물을 빙 돌아 뒤쪽으로가니 뒷문이 출입구다. 들어갔더니 넓은 건물 내부에서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겠어 짐을 끌고 경사로를 올랐더니 문들이 다 잠겨있다. 결국 짐을 내팽겨 치고 1층으로 다시 내려와 한 귀퉁이에 있는 카페에서 체크인을 할 수 있었다. 딱히 큰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지라 침대시트도 돈을 안 받고 그냥 빌려준다. 보안은 철저히 돼있어 입구부터 침실, 샤워실 갈 때마다 알려준 비밀번호로 버튼키를 누른 상태에서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는데, 이런 방식들까지 모두 낯설다.
하나같이 건물들이 웅장하니 이 학생클럽 빌딩이 그리 큰 줄 몰랐는데 내부로 들어가니 공간들이 휑할 정도로 널찍하다. 내가 묵는 방은 체육관 같은 곳 한쪽을 막아 쓰는 것 같은데 2층 침대 수십개를 늘어놨다. 한 구석의 나무 비계에 쌓인 먼지도 어마어마하고, 페인트칠이 다 벗겨져가는 낡은 벽에, 지저분하기가 난민수용소 저리가라다. 창문에 걸쳐있는 나무판자를 이어놓은 블라인드도 침침한 분위기를 더한다. 방안을 쭉 둘러보니 한쪽에 바에서 쓰는 것과 같은 주방공간이 있고 그 안쪽으로 쑥 들어간 공간이 있는데 거기도 침대들이 쭉 놓여있다.
가만히 보니 이곳은 이 대학 학생중 여름방학 동안 집에 가지 못한 외국인 학생들이 머무는 듯하다. 러시아와 동양계 여학생들 한떼가 몰려있는데 개인공간 확보를 위해 침대에 천을 쳐놓고, 화장품을 잔뜩 늘어놓고, 난장판이 따로없다. 그때 노트북으로 KBS 채널 드라마를 보고 있는 검은머리 여학생이 보인다. 그냥 모른척할까 하다가, 한국말로 대화를 해본지도 너무 오래됐고 헬싱키에서 만난 한 여대생이 NTNU에서 교환학생을 했다면서 한국의 주요대학들이 거의 교환협정을 맺고 있어 유학생 중에는 독일인을 빼고는 한국인이 가장 많다는 얘기를 해준 것이 기억이 났다. 그래서 그 동양인 여학생에게 "한국방송 드라마 보는 거 봤다, 한국인 있느냐"고 물어보니 "나는 홍콩에서 왔고, 여기 다른 한국인 학생들 본래 많다"면서 귀찮은듯이 짜증스럽게 대답을 한다. 한류드라마를 보는 것과 한국인에 대한 호감은 비례하지 않는가보다. 아니면 그저 본래 그런 성향의 인간이든지.
지하층 샤워실에서 샤워를 하고 올라오니 해도 너무 했다. 젊은 학생들만 묵는 곳인줄 알았더니, 옆자리에는 나이든 대머리 아저씨가 젊은 동양여인이 오는 것을 보고 좋아서 웃는다. 나도 "하이"하고 맞인사를 해주기는 했지만, 기가 막혀서 노트북 컴퓨터를 챙겨들고 1층 카페로 다시 내려가 차 한잔을 시켜놓고 원고를 좀 썼다. 카운터의 남학생에게 인터넷 연결을 도와달라고 하니, 역시 이공계생답게 한국어로 돼있는 설정임에도 몇번 클릭을 하더니 금세 연결을 시켜준다. 트론헤임은 유럽 최초 무선인터넷 도시중 하나고 구글 노르웨이 지사도 이곳에 있다고 한다.
노르웨이인들은 가족이나 고향친구 위주로 관계를 맺고 타지인을 저녁식사에 초대하거나 하는 일은 드물다고 들었다. 이곳에서도 새삼 노르웨이인의 폐쇄성을 느끼는 것이 학생들이 하나같이 순수하고 착한 것은 알겠는데, 젊은이들도 여전히 외국인에 대한 수줍음이 큰 듯하다. 내가 노트북 충전을 위해 콘센트를 찾자 자리를 비켜주고 소파를 빼주고들 한다. 한참 글을 쓰다보니 옆 테이블에서 내 국적을 놓고 논쟁이 붙었다. 노르웨이어로 떠들어도 '재패니스'라는 말은 다 알아듣는다는 걸 그렇게 모를까. 결국 자기네들끼리 '재패니스'라고 결론을 맺었다. 왜 와서 직접 물어보지 않는지, 조금 섭섭했다.
근데 나도 그들 무리에게 먼저 말을 걸게 되지 않는다. "나 코리안이야"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뜬금없이 끼어들 친화력이 내게는 없다. 자정이 다 된 시간이라 그들에게 그냥 웃어보이고 2층의 침실로 올라왔다. 이 카페는 밤 11시까지 문을 연다고 안내해놓고도,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이라 자기네들끼리 웃고 떠드느라 시간이 가는 줄을 모른다.
막상 내가 찜해놓은 침대로 와보니 기절할 노릇이다. 서양인 여행객들은 짐을 줄이기 위해서인지 잠옷을 챙겨오지 않고 팬티만 입고 자는 것을 좀 봤는데, 이 아저씨가 털이 숭숭난 다리를 다 드러내고 자고 있는 것이다. 진짜 경악을 금치 못할 만큼 무섭고 징그러워서 조용히 시트만 챙겨들고 문가 자리로 옮겨 잔뜩 웅크리고 눈을 붙였다. 다음날인 7월9일 아침에 일어나니 그 아저씨가 내가 자리를 옮긴 것을 알고 째려본다. 째려보면 어쩔건데? 아무리 만민평등사상을 적용하려지만 도저히 동양여인의 정서로는 감당이 안 된다.
◇'끼 떠는' 게이총각의 나무 궁전 안내
카페로 제공해주는 아침식사를 먹으러 갔다. 싼게 비지떡이라도 빵, 잼, 우유. 시리얼, 사과 정도로만 이뤄진 간단한 아침이지만 안 줘도 그만인 식사까지 챙겨주는 학생들의 정성이 갸륵하다. 내가 좋아하는 대학 캠퍼스 구경을 위해 나섰다. NTNU는 노르웨이 4대 대학 중 하나로 손꼽힌다고 한다. 인터레일센터에서 캠퍼스 안쪽으로 들어가는 길은 어찌나 무성한 나무들로 공원 조성이 잘 돼있는지 그저 이를 가로질러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언덕배기 계단조차 나무로 만들었다. 방학중인 데다가 이른 아침이라 캠퍼스에는 인적이 없다. 작은 열차 두어대를 야외에 전시해놓았는데, 이유를 물어볼 사람이 없어서 답답했다.
트롬쇠대학 캠퍼스에서도 봤지만 대형 유리온실 같은 건물이 이곳에도 있다. 긴 겨울에도 푸른식물을 보기 위해 이런 식의 건물을 짓나본데 하늘색 격자 창틀을 둘러 상쾌하고 깔끔한 느낌이 좋다. 문이 열려있어 슬쩍 들어가봤다. 2층 연구실 내부 유리창에 삼색 태극선을 걸쳐 놓은 것이 보인다. 한국학생들이 많다고 하더니 누군가 교수에게 선물을 했나보다. 그 연구실로 올라가보니 '네가 보는 것이 곧 너 자신이다'라는 영어문구가 새겨진 2005년 트론헤임 국제영화제 포스터가 붙어있어 인상적이다.
숙소에 들러 짐을 싸들고 나와 북유럽에서 가장 큰 목조 왕궁이라는 스티프츠고르덴을 보러 갔다. 애초 왕궁을 목적으로 지어진 건물은 아니나 왕족거주지로서 궁전이라고는 불리고 있다. 겨자색 페인트로 칠해진 대형건물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6월1일~8월20일에만 월~토요일 오전 10~오후 5시, 일요일 정오~오후 5시 문을 연다. 1시간마다 있는 가이드투어를 통해서만 관람이 가능하고 내부 사진촬영은 안 된다. 내가 간 시간에는 유럽남녀 한쌍과 나, 단 3명뿐이다. 노르웨이어, 영어,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4개국어로 안내가 가능하다고 한다. 신발 위에 비닐 덮개를 씌워야만 입장할 수 있고, 가이드는 입구를 지키고 있던 게이 청년이 맡아 영어로 진행됐다.
대학원에 다닐 때 퀴어영화제에서 자원봉사를 한 적이 있어 동성애문화에 대한 경험이 좀 있는데, 게이 남성들의 다소 여성스러운 행동을 스스로들 '끼떤다'고 부른다. 영어 설명을 일일이 기억하며 듣느라 두뇌가 좀 피곤했지만 이 총각의 끼떠는 모습을 구경하는 재미도 사실 좀 있었다. 가이드 하는 도중에도 가벼운 걸음걸이와 섬세한 손놀림으로 조금만 비뚤어져 있어 보이는 의자나 테이블보를 정리하는 모습이 격조를 무척 따지는 듯 싶었다. 나보다도 체구가 작은 이 청년은 유난히 영국식 액선트가 강한 영어를 사용했는데 왕가에 소속돼 일하는 것에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듯 했다.
솔직히 민주주의 나라에서 온 나는 현대에까지 이런 왕족, 귀족이 존재한다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평등사상이 강한 북유럽국가들이 여전히 왕국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이해가 잘 안 간다. 현재는 정치적인 파워를 가지고 있는 왕은 없고, 왕조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있지만 대표적 입헌군주국인 영국이 영국민의 단합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상당한 홍보, 관광 효과 때문에 왕실을 유지한다고 하는 것과 같은 명분도 있는 것이다.
이 청년의 설명에 따르면, 애초 이 건물은 1774~78년 부자남편으로부터 큰 유산을 받은 한 과부에 의해 지어졌는데, 1800년에 국가 소유가 되면서 여러 용도로 사용돼오면서 왕족들이 트론헤임에 방문할때 거주지로 이용하다가 1905년 스웨덴에서 독립한 후 1906년부터 완전히 현 노르웨이 왕실 소유가 됐다고 한다. 4000㎡ 넓이에 150개의 방이 있는데 파리에서 구해온 화려한 실크 벽지와 상들리에 등에 대한 설명이 줄줄이 이어진다. 내 눈길을 끄는 것은 왕족을 찍은 과거의 흑백사진이다. 당시 유행에 따라 허리가 한줌밖에 안 되던 왕비, 네다섯살 때 역시 유행에 따라 여자아이 옷을 입힌 왕자 사진 등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왕족이 오면 3층의 개인방에서 머물기에 왕궁관람이 금지되는데, 대개 트론헤임에 와도 인근 아파트에서 투숙하므로 폐쇄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최근에는 2005년 일본 왕실이 방문했을 때와 2006년 왕실전용 100주기 행사 때문에 닫혔던 것이 전부라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게이 청년이 내가 이미 신분증을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일본인이라고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철석 같이 믿고 있는 듯하다는 것이다. 일본왕실 얘기가 나올 때마다 내 눈을 쳐다보며 공감을 요구하는 것이다. 아예 그렇게 전제해놓고 말로 물어보는 것도 아니니 나는 한국인이라고 새삼 밝힐 타이밍이 없다. 나를 아예 일본인이라고 치부해버리는 현지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나는 한국이 일제에서 해방되지 못한 현대를 그린 복거일의 소설 '비명을 찾아서'가 생각나 쭈뼛한다. 일제시대를 살아보지 못했기에 우리나라가 광복되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 번도 못했는데 이 소설을 읽어본 후라 일본의 2등 신민(臣民)으로 살아야 했을 생각을 하니 끔찍하다. < 7월 8∼9일 노르웨이 천년고도 트론헤임에서 >
대중문화평론가 EriKim0214@gmail.com
<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맛집,여행 > 가고싶은나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오노 나나미도 놀란 로마황제의 비참한 말로 (0) | 2012.11.01 |
---|---|
여자들을 위한 안성맞춤 여행지-Women and the City (0) | 2012.10.31 |
오로라-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나요? (0) | 2012.10.31 |
Resorts in Krabi 끄라비 (0) | 2012.10.31 |
신비로운 자연 옛모습 그대로 (0) | 2012.10.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