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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뉴시스】김에리의 '80일간의 북유럽 일주' < 33 >

우산도 없이 비를 줄줄 맞으며 나아가는 길. 다행히 지도도 볼 줄 알고 방향감각도 있는데(이 둘 다 없는 여성이 꽤 있다) 지도를 보고는 거리까지 가늠하기가 영 힘들다. 기차역이 항구변과 붙어있길래 지도상 크루즈터미널 쪽에 있는 팝·록 국립센터 록헤임(Rockheim)을 가보려다 도저히 길을 찾지 못해 중심가쪽으로 방향을 튼 터이다.

북유럽 건물의 특징이 처마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빗물의 방해로 고개도 쳐들 수 없어 푹 젖어버린 지도도, 벽에 붙어있을 거리명도 볼만한 여건이 도저히 안 된다. 버스정류소 부스에 잠시 몸을 피했다가 여행안내소를 찾긴 찾았으나 이른 일요일 아침인지라 당연히 문이 닫혀있다. 그래도 빗줄기를 뚫고 계속 걸어가다보니 트론헤임의 가장 큰 관광명소 니다로스 대성당(Nidarosdomen)이 떡 나타난다. 비에 맞아 들고 보던 지도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누더기가 됐는데, 티켓부스 쪽에 다행히 새 지도가 있어 구할 수 있었다.

성당 안에는 때마침 일요 아침예배가 열리고 있어 참석했다. 오래된 교회들 중 내부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는 곳들이 있는데 이곳도 사진 촬영 금지다. 비는 내리지, 어두운 가운데 색색깔 스테인드글래스가 만들어내는 오묘한 조명, 석조건물이지만 나무가 많은 지역답게 나무로 만들어진 가구들이 뿜어내는 오래된 나무 냄새, 촛불 타는 냄새들이 어우러지며 백일몽이라도 꾸듯 몽롱한 느낌이 들어 나홀로 현실과 유리된 듯, 수많은 관광객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북유럽은 모두 루터교회로 개신교인 데도 가톨릭적인 풍모가 여전하다. 신학생 티를 갓 벗은 보조사제가 사제복을 입고 영어로 가이드를 하는 것을 좀 지켜봤는데 아주 착해보이는 그 순수한 얼굴이 전혀 이국인 같이 낯설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여행 한 달이 넘어가니 이들의 얼굴에 익숙해진 탓도 있겠지. 신앙심이 사라진 시대, 절대자에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의지할 수 있는 그의 마음이 문득 부러워졌다.

우산이 없으니 불편한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떨어지는 빗방울에 위를 올려다볼 수 없어 대체 이 성당의 외양도 마음껏 감상할 수 없는데다가, 카메라 렌즈에 빗방울이 맺히니 사진도 찍을 수 없다. 나다로스 대성당은 길이 101m, 너비 50m, 높이 30m로 노르웨이에서 가장 큰 중세건물이다. 정면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상을 중심으로 54명의 성인 조각이 늘어서있는 장엄한 석조건물이다. 날 맑은 날 망원경이라도 들고 와 다시 자세히 보고픈 마음이 굴뚝같다.

노르웨이 제3도시 트론헤임은 이름 자체가 주는 느낌도 참 고급스럽지만 중세 노르웨이의 수도였던지라 천년고도다운 고풍스러운 느낌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전반적으로 핀란드의 고도 투르쿠와 비슷한 느낌이다. 역시나 투르쿠처럼 나무가 흔한 지역답게 목조건물이 많아 도시가 화재로 무너졌다가 재건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997년 올라프 트뤼그바손 왕 때 도시의 기초가 다져졌다고 하는데 지금도 왕의 대관식은 니다로스 대성당에서 이뤄진단다.

나란히 몰려있는 니다로스 대성당 입장료 60크로네, 대주교 궁전 박물관 60크로네, 왕권 상징물 전시(Crown Regalia) 80크로네인데 모두 다 들어갈 수 있는 올인원 티켓을 구입하면 120크로네다. 성당 첨탑 투어는 30크로네를 따로 내야하는데 안전문제상 한번에 참여할 수 있는 인원이 제한돼있어 금세 마감돼 올라가 볼 수 없었다.

아치를 지나 뒤쪽 마당으로 가 사방을 둘러싼 돌벽 건물중 하나에 들어서니 왕권 상징물 전시실이다. 1000년을 이어내려온 노르웨이 왕실의 상징인 왕관, 홀, 보주(寶珠), 칼 등은 대관식에 쓰이는 물건들이라고 한다. 현 국왕 하랄드5세의 대관식 장면 사진도 볼 수 있다.

오른쪽 돌벽건물에 나무 문 입구가 하나 보인다. 이곳이 박물관인가 해서 들어가보니, 여기는 시대별 군사·무기 전시실로 입장료는 없다. 밀리터리 아이템에 관심 많은 이들에게는 더할나위 없어 보인다. 대각선쪽이 대주교 궁전 박물관인데 1070년 세워진 나다로스 성당과 주변 건물들이 몇 차례에 걸쳐 붕괴, 재건되는 동안 발굴된 유물들이 전시돼있다. 지금의 대주교 궁전 건물이 세워지기 전 1991~95년에 12개국에서 온 120명의 고고학자들이 15만점에 달하는 유물을 발견했다는 설명이다.

압권은 나다로스 대성당에 쓰여졌던 중세 장식석들. 이 성당은 1531년 대화재 때 많은 벽이 무너졌고 이를 재건축하는 과정에서 장식석들을 그냥 가져다 썼는데, 1870~80년대 이 벽을 허물면서 다시 모습을 드러내게 됐다고 한다. 노르웨이인의 장인정신과 예술적인 측면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데, 굉장히 토속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하다. 교회 벽에 새겨졌다기에는 이교도적 영향을 받은 듯한 동물문양들도 투박한 듯 해학적이다. 감상 후 느낌을 묻는 미모의 여직원에게 이 얘기를 해주자 무척 좋아한다.

박물관 지하에서 대성당 재건축과 발굴, 복원 작업을 담은 비디오를 보여주는데 이것도 꽤 볼만하다. 외벽에 장식된 석조상들을 내레이션과 함께 자세히 보여준다. "돌리 파턴 성형한 것처럼 늘어진 현대적이고 유머러스한 얼굴 조각"이라는 설명에 관람객들이 동시에 자지러진다.

◇중국에 다녀왔다는 푸른눈의 아가씨

오후가 되니 비가 잦아들어 지도상 대성당 건너편에 있는 트론헤임 미술관에 가볼까 하고 나섰다. 마침 통통한 볼을 한 예쁘장한 소녀가 지나가길래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이 마주쳤다. 내가 남자였다면 이 아가씨를 따라 이곳에 정착하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푸른 눈이다. 마을아가씨에 반해 낯선 마을에 정착하는 외로운 나그네의 전설같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방향을 물었다. 역시나 내 경험치는 틀리지 않아 때묻지 않은 틴에이저들은 외국인에게 선입견 없이 친절하다.

조잘조잘 영어로 수다를 떨며 굳이 그럴 필요 없다고 하는데도 나를 미술관 바로 앞까지 데려다줬다. 그녀는 마침 대성당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던 참이었다. 어디서 왔느냐고 묻기에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야, 진짜 멀리서 왔구나"하고 감탄하며 바로 앞 건물을 가리킨다. 자신은 저 학교에 다닌다고 소개한다. 대성당에서 운영하는 학교라 예전에는 남자만 갈 수 있는 목사양성 신학교였는데 지금은 그저 남녀공학 고교가 됐다는 친절한 설명도 덧붙인다. 그러면서 자기도 내년에는 대학갈 나이라고 뻐기는 것이 귀엽다.

멀지 않은 미술관에 도달하니, 웬일 7월20일까지 재개장한다는 흰종이 하나만 떡 붙어있고 닫혀있다. 금발에 푸른눈을 한 천사같은 이 소녀는 마치 자기가 잘못이라도 한 듯 "왜 닫혔지"하면서 울상이 된다. 노르웨이 국민화가 뭉크 작품 등을 소장한 노르웨이에서 세 번째로 큰 미술관이라지만, 어차피 오슬로뭉크미술관에 갈 예정이니 크게 아쉬움은 없다.

바로 앞까지 데려다줘서 고맙다고 거듭 인사하니 그제서야 "사실은 나 중국에 여행 갔었거든. 근데 거기 사람들 영어를 하나도 못하더라"라며 눈이 부시도록 환하게 웃는다. 자기도 먼 이국에서 말도 통하지 않고, 길도 찾기 어려운 경험을 해본지라 역지사지가 된 것이다. 여행을 다녀보면 유독 친근감을 보이며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같은 여행자들이거나 현지인일 경우 낯선 나라에 여행을 많이 다녀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여행을 하는 동안 서울 거리에서 지나치며 봤던 몇몇 외국인 여행자들이 떠올랐다. 지하철 매표기 앞에서 '퍼킹 머신'을 외치며 열을 내던 미국인 청년들, 혹은 지도를 펼쳐놓고 방향을 가늠하지 못해 헤매이는 것 같던 외국인들. 고향과 멀어질수록 모든 것이 확연히 다르다. 그 미국인 청년들은 먼저 가격 버튼을 누르고 동전을 넣어야하는 매표기 사용법을 몰라, 동전을 먼저 넣으면서 계속 동전이 그냥 반환되는데 열을 내고 있었던 것이다. 상황을 뻔히 알고 영어를 알면서도 그들을 도와주지 못했다. 그냥 친절을 베풀면 되는건데 수줍음과 이국인 남성에게 먼저 호의를 베푸는 것이 혹시 오해를 낳을까 저어하는 복합적인 마음이었다. 처지가 바뀌고 보니 그때 그들을 도와주지 못한 것이 무척 후회가 됐다. 아주 오래 전 일인데도 내가 도움이 절실한 낯선 환경에 처하다보니 새삼 기억이 떠올랐다.

소녀와 헤어진 후 미술관 뒤쪽으로 가보니 한창 수리 중인 것을 볼 수 있다. 뒷마당에 외부 전시해놓은 조각상 몇 점 사진 찍고 국립장식미술관(노르덴피엘스케 쿤스트인두스트리무세움)으로 이동했다. 의상, 보석 등의 장신구와 도자기, 촛대 등 생활용품, 의자 등이 주요 전시품들이다. 1층 비상설 전시관에는 6월16일~9월16일 1900년대 중반 현대디자인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노르웨이는 북유럽 가구 디자인계에서 좀 소외된 편이라고 하더니 전시된 의자와 책상은 덴마크, 핀란드, 영국 등 해외 디자이너의 작품이 대다수다.

오전 내 비가 쏟아졌다지만 신기할 정도로 관람객이 없다. 나 혼자 전세라도 낸 듯 3층 구조의 미술관을 돌아봤다. 샘이 나는 것은 '일본 컬렉션'. 유럽의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준 일본 예술작품과 공예품들을 노르웨이에서는 유일한 것들이라며 전시를 해놨다. 화려한 기모노, 일본 무사 갑옷 등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역시 유럽에서는 일본문화가 극동 아시아의 대표적 문화처럼 여겨지나 싶어 질투심도 들고 씁쓸하다.

◇난민수용소 같은 초다인실 혼숙 호스텔

다시 기차역으로 돌아와 라커에서 오늘 하룻밤을 지낼 때 필요한 물건들만 빼내 배낭에 넣고 무거운 캐리어는 남겨두고 숙소로 향했다. 본래는 트론헤임 호스텔(Trondheim Vandrerhjem)에 묵을 예정으로 e-메일을 보냈더니 6월중순부터 2012년 하반기 내내 재건축을 할 것이라며(공사가 길어지는지 나중에 홈페이지를 보니 2013년 9월초에나 재개장한단다) 주변의 저렴한 다른 숙소를 추천하는 답변을 보내왔다.

유전에서 오일까지 펑펑 나와 세계 최고의 부를 자랑하는 나라인 데다가 겨울이 길고 눈도 많이 오는지라 여름철에 많은 공사들이 이뤄지고, 관광객 사정 봐줄 것도 아니다. 할 수 없이 NTNU(Norwegian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 학생들이 학생클럽 건물에 여름 한철(6월18일~8월11일) 운영하는 트론헤임 인터레일센터에 1박을 예약했다. 노르웨이를 통틀어 가장 저렴하다고 할 만한 단돈 200크로네(약 4만원)에 아침까지 준다. 몇몇 호스텔에 싼 가격으로 한 방에 수십명씩 재워주는 초다인실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이곳도 그런 곳들 중 하나다. 베르겐 인터미션은 60여명을 한 방에 몰아넣는다고 하고, 코펜하겐 슬립인헤븐은 3층 침대까지 갖춰놓고 있다고 한다.

오후에 되니 기차역 렌터카 사무소가 문을 열었길래 물으니 버스터미널과 타야하는 버스번호를 친절하게 알려줘서 버스를 타고 인터레일센터 앞에 도착했다. 둥근 탑처럼 생긴 낮은 붉은 벽돌건물이다. 짐을 질질 끌고 정문으로 갔더니 무거워 보이는 철문은 잠겨있고 다른 편 입구로 와야한다는 A4 크기 흰종이 한장이 붙어있다. 이들은 대형 안내판은 미관을 해치는거라고 인식하고 있는 게 확실하다. 어디에 가나 이런 식이다. 현지 언어도 모르는 상태에서 영어 안내문은 이렇게 코딱지 만한 활자로 프린트해서 붙여 놓는게 다이니, 낭비하게 되는 활동거리가 너무 많다. 그래도 미리 숙소를 다 예약하고 와 잘 곳이 없어 헤매는 일이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그랬다면 더 진이 빠졌을 터이다.

다시 정문계단을 내려왔는데 다른 편이라는게 도저히 어디를 말하는 건지, 지칠만큼 지쳐 어느 쪽으로 가야하는 건지 가늠도 안 된다. 결국 건물을 빙 돌아 뒤쪽으로가니 뒷문이 출입구다. 들어갔더니 넓은 건물 내부에서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겠어 짐을 끌고 경사로를 올랐더니 문들이 다 잠겨있다. 결국 짐을 내팽겨 치고 1층으로 다시 내려와 한 귀퉁이에 있는 카페에서 체크인을 할 수 있었다. 딱히 큰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지라 침대시트도 돈을 안 받고 그냥 빌려준다. 보안은 철저히 돼있어 입구부터 침실, 샤워실 갈 때마다 알려준 비밀번호로 버튼키를 누른 상태에서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는데, 이런 방식들까지 모두 낯설다.

하나같이 건물들이 웅장하니 이 학생클럽 빌딩이 그리 큰 줄 몰랐는데 내부로 들어가니 공간들이 휑할 정도로 널찍하다. 내가 묵는 방은 체육관 같은 곳 한쪽을 막아 쓰는 것 같은데 2층 침대 수십개를 늘어놨다. 한 구석의 나무 비계에 쌓인 먼지도 어마어마하고, 페인트칠이 다 벗겨져가는 낡은 벽에, 지저분하기가 난민수용소 저리가라다. 창문에 걸쳐있는 나무판자를 이어놓은 블라인드도 침침한 분위기를 더한다. 방안을 쭉 둘러보니 한쪽에 바에서 쓰는 것과 같은 주방공간이 있고 그 안쪽으로 쑥 들어간 공간이 있는데 거기도 침대들이 쭉 놓여있다.

가만히 보니 이곳은 이 대학 학생중 여름방학 동안 집에 가지 못한 외국인 학생들이 머무는 듯하다. 러시아와 동양계 여학생들 한떼가 몰려있는데 개인공간 확보를 위해 침대에 천을 쳐놓고, 화장품을 잔뜩 늘어놓고, 난장판이 따로없다. 그때 노트북으로 KBS 채널 드라마를 보고 있는 검은머리 여학생이 보인다. 그냥 모른척할까 하다가, 한국말로 대화를 해본지도 너무 오래됐고 헬싱키에서 만난 한 여대생이 NTNU에서 교환학생을 했다면서 한국의 주요대학들이 거의 교환협정을 맺고 있어 유학생 중에는 독일인을 빼고는 한국인이 가장 많다는 얘기를 해준 것이 기억이 났다. 그래서 그 동양인 여학생에게 "한국방송 드라마 보는 거 봤다, 한국인 있느냐"고 물어보니 "나는 홍콩에서 왔고, 여기 다른 한국인 학생들 본래 많다"면서 귀찮은듯이 짜증스럽게 대답을 한다. 한류드라마를 보는 것과 한국인에 대한 호감은 비례하지 않는가보다. 아니면 그저 본래 그런 성향의 인간이든지.

지하층 샤워실에서 샤워를 하고 올라오니 해도 너무 했다. 젊은 학생들만 묵는 곳인줄 알았더니, 옆자리에는 나이든 대머리 아저씨가 젊은 동양여인이 오는 것을 보고 좋아서 웃는다. 나도 "하이"하고 맞인사를 해주기는 했지만, 기가 막혀서 노트북 컴퓨터를 챙겨들고 1층 카페로 다시 내려가 차 한잔을 시켜놓고 원고를 좀 썼다. 카운터의 남학생에게 인터넷 연결을 도와달라고 하니, 역시 이공계생답게 한국어로 돼있는 설정임에도 몇번 클릭을 하더니 금세 연결을 시켜준다. 트론헤임은 유럽 최초 무선인터넷 도시중 하나고 구글 노르웨이 지사도 이곳에 있다고 한다.

노르웨이인들은 가족이나 고향친구 위주로 관계를 맺고 타지인을 저녁식사에 초대하거나 하는 일은 드물다고 들었다. 이곳에서도 새삼 노르웨이인의 폐쇄성을 느끼는 것이 학생들이 하나같이 순수하고 착한 것은 알겠는데, 젊은이들도 여전히 외국인에 대한 수줍음이 큰 듯하다. 내가 노트북 충전을 위해 콘센트를 찾자 자리를 비켜주고 소파를 빼주고들 한다. 한참 글을 쓰다보니 옆 테이블에서 내 국적을 놓고 논쟁이 붙었다. 노르웨이어로 떠들어도 '재패니스'라는 말은 다 알아듣는다는 걸 그렇게 모를까. 결국 자기네들끼리 '재패니스'라고 결론을 맺었다. 왜 와서 직접 물어보지 않는지, 조금 섭섭했다.

근데 나도 그들 무리에게 먼저 말을 걸게 되지 않는다. "나 코리안이야"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뜬금없이 끼어들 친화력이 내게는 없다. 자정이 다 된 시간이라 그들에게 그냥 웃어보이고 2층의 침실로 올라왔다. 이 카페는 밤 11시까지 문을 연다고 안내해놓고도,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이라 자기네들끼리 웃고 떠드느라 시간이 가는 줄을 모른다.

막상 내가 찜해놓은 침대로 와보니 기절할 노릇이다. 서양인 여행객들은 짐을 줄이기 위해서인지 잠옷을 챙겨오지 않고 팬티만 입고 자는 것을 좀 봤는데, 이 아저씨가 털이 숭숭난 다리를 다 드러내고 자고 있는 것이다. 진짜 경악을 금치 못할 만큼 무섭고 징그러워서 조용히 시트만 챙겨들고 문가 자리로 옮겨 잔뜩 웅크리고 눈을 붙였다. 다음날인 7월9일 아침에 일어나니 그 아저씨가 내가 자리를 옮긴 것을 알고 째려본다. 째려보면 어쩔건데? 아무리 만민평등사상을 적용하려지만 도저히 동양여인의 정서로는 감당이 안 된다.

◇'끼 떠는' 게이총각의 나무 궁전 안내

카페로 제공해주는 아침식사를 먹으러 갔다. 싼게 비지떡이라도 빵, 잼, 우유. 시리얼, 사과 정도로만 이뤄진 간단한 아침이지만 안 줘도 그만인 식사까지 챙겨주는 학생들의 정성이 갸륵하다. 내가 좋아하는 대학 캠퍼스 구경을 위해 나섰다. NTNU는 노르웨이 4대 대학 중 하나로 손꼽힌다고 한다. 인터레일센터에서 캠퍼스 안쪽으로 들어가는 길은 어찌나 무성한 나무들로 공원 조성이 잘 돼있는지 그저 이를 가로질러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언덕배기 계단조차 나무로 만들었다. 방학중인 데다가 이른 아침이라 캠퍼스에는 인적이 없다. 작은 열차 두어대를 야외에 전시해놓았는데, 이유를 물어볼 사람이 없어서 답답했다.

트롬쇠대학 캠퍼스에서도 봤지만 대형 유리온실 같은 건물이 이곳에도 있다. 긴 겨울에도 푸른식물을 보기 위해 이런 식의 건물을 짓나본데 하늘색 격자 창틀을 둘러 상쾌하고 깔끔한 느낌이 좋다. 문이 열려있어 슬쩍 들어가봤다. 2층 연구실 내부 유리창에 삼색 태극선을 걸쳐 놓은 것이 보인다. 한국학생들이 많다고 하더니 누군가 교수에게 선물을 했나보다. 그 연구실로 올라가보니 '네가 보는 것이 곧 너 자신이다'라는 영어문구가 새겨진 2005년 트론헤임 국제영화제 포스터가 붙어있어 인상적이다.

숙소에 들러 짐을 싸들고 나와 북유럽에서 가장 큰 목조 왕궁이라는 스티프츠고르덴을 보러 갔다. 애초 왕궁을 목적으로 지어진 건물은 아니나 왕족거주지로서 궁전이라고는 불리고 있다. 겨자색 페인트로 칠해진 대형건물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6월1일~8월20일에만 월~토요일 오전 10~오후 5시, 일요일 정오~오후 5시 문을 연다. 1시간마다 있는 가이드투어를 통해서만 관람이 가능하고 내부 사진촬영은 안 된다. 내가 간 시간에는 유럽남녀 한쌍과 나, 단 3명뿐이다. 노르웨이어, 영어,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4개국어로 안내가 가능하다고 한다. 신발 위에 비닐 덮개를 씌워야만 입장할 수 있고, 가이드는 입구를 지키고 있던 게이 청년이 맡아 영어로 진행됐다.

대학원에 다닐 때 퀴어영화제에서 자원봉사를 한 적이 있어 동성애문화에 대한 경험이 좀 있는데, 게이 남성들의 다소 여성스러운 행동을 스스로들 '끼떤다'고 부른다. 영어 설명을 일일이 기억하며 듣느라 두뇌가 좀 피곤했지만 이 총각의 끼떠는 모습을 구경하는 재미도 사실 좀 있었다. 가이드 하는 도중에도 가벼운 걸음걸이와 섬세한 손놀림으로 조금만 비뚤어져 있어 보이는 의자나 테이블보를 정리하는 모습이 격조를 무척 따지는 듯 싶었다. 나보다도 체구가 작은 이 청년은 유난히 영국식 액선트가 강한 영어를 사용했는데 왕가에 소속돼 일하는 것에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듯 했다.

솔직히 민주주의 나라에서 온 나는 현대에까지 이런 왕족, 귀족이 존재한다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평등사상이 강한 북유럽국가들이 여전히 왕국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이해가 잘 안 간다. 현재는 정치적인 파워를 가지고 있는 왕은 없고, 왕조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있지만 대표적 입헌군주국인 영국이 영국민의 단합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상당한 홍보, 관광 효과 때문에 왕실을 유지한다고 하는 것과 같은 명분도 있는 것이다.

이 청년의 설명에 따르면, 애초 이 건물은 1774~78년 부자남편으로부터 큰 유산을 받은 한 과부에 의해 지어졌는데, 1800년에 국가 소유가 되면서 여러 용도로 사용돼오면서 왕족들이 트론헤임에 방문할때 거주지로 이용하다가 1905년 스웨덴에서 독립한 후 1906년부터 완전히 현 노르웨이 왕실 소유가 됐다고 한다. 4000㎡ 넓이에 150개의 방이 있는데 파리에서 구해온 화려한 실크 벽지와 상들리에 등에 대한 설명이 줄줄이 이어진다. 내 눈길을 끄는 것은 왕족을 찍은 과거의 흑백사진이다. 당시 유행에 따라 허리가 한줌밖에 안 되던 왕비, 네다섯살 때 역시 유행에 따라 여자아이 옷을 입힌 왕자 사진 등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왕족이 오면 3층의 개인방에서 머물기에 왕궁관람이 금지되는데, 대개 트론헤임에 와도 인근 아파트에서 투숙하므로 폐쇄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최근에는 2005년 일본 왕실이 방문했을 때와 2006년 왕실전용 100주기 행사 때문에 닫혔던 것이 전부라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게이 청년이 내가 이미 신분증을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일본인이라고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철석 같이 믿고 있는 듯하다는 것이다. 일본왕실 얘기가 나올 때마다 내 눈을 쳐다보며 공감을 요구하는 것이다. 아예 그렇게 전제해놓고 말로 물어보는 것도 아니니 나는 한국인이라고 새삼 밝힐 타이밍이 없다. 나를 아예 일본인이라고 치부해버리는 현지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나는 한국이 일제에서 해방되지 못한 현대를 그린 복거일의 소설 '비명을 찾아서'가 생각나 쭈뼛한다. 일제시대를 살아보지 못했기에 우리나라가 광복되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 번도 못했는데 이 소설을 읽어본 후라 일본의 2등 신민(臣民)으로 살아야 했을 생각을 하니 끔찍하다. < 7월 8∼9일 노르웨이 천년고도 트론헤임에서 >

대중문화평론가 EriKim02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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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박찬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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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폴리스의 전경.

ⓒ 박찬운

페르세폴리스는 시라즈에서 이스파한으로 가는 간선도로를 타고 약 70여 킬로미터를 가는 곳에 있다. 이곳은 통상 아케메네스 왕조의 수도로 알려진 곳이나 좀 더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아케메네스는 수도를 행정적 수도와 왕이 사는 왕도(또는 종교적 수도)로 나누어 운영한 것으로 보인다. 즉 이 왕조를 연 키루스 대왕은 바빌로니아의 옛 수도였던 수사를 행정적 수도로 정하였으나 왕이 사는 왕도로는 파사르가데를 새로이 만든다. 그 뒤 다리우스 1세는 왕도를 파사르가데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신도시 페르세폴리스로 옮긴다.

페르세폴리스는 아케메네스의 최전성기인 다리우스 1세 시절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그의 손자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BC 469년) 때 완성된 도시다. 이곳은 알렉산더의 원정 때 그의 군대가 술을 마시며 저지른 방화로 완전히 전소되었다고 한다.

어떻게 이런 거대 대리석 궁전이 하룻밤의 불로 주저앉을 수가 있었을까. 전문가들은 그에 대한 해답으로 당시 이 궁전의 기둥은 모두 석주였지만 지붕은 통나무였을 것이라는 설명을 한다. 따라서 지붕에 불이 붙자 그것과 연결된 모든 부속품들은 녹아서 궁전 전체가 주저앉았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마치 9·11 사태 때 뉴욕의 월드트레이드 빌딩이 녹아서 무너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페르세폴리스는 지난 2000년 이상 땅속에 파묻혀 있다가 1931년 미국 시카고 대학의 동방연구소 고고학팀에 의해서 발굴됨으로써 세상에 그 존재가 알려졌다.

'왕 중의 왕' 다리우스의 흔적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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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폴리스의 그 유명한 조공행렬도.

ⓒ 박찬운

그럼 지금부터 현재 남은 이 궁전의 모습을 설명해 보자. 우선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궁전 입구 계단을 올라오면 만국의 문을 만나게 된다. 아케메네스 왕조의 번성기에는 외국의 사신이 이곳을 방문하면 계단의 맨 위에서 우렁찬 트럼펫이 울렸다고 한다. 그러면 사신을 맞이하는 영접사가 나가 사신을 맞이하여 만국의 문으로 안내한다. 이들이 들어 오는 문 양편에는 돌로 만든 목우상과 사람의 얼굴에 날개 달린 짐승 몸뚱이를 한 유익인면수신상(有翼人面獸身像)이 나타난다.

이 날개에는 크세르크세스 1세의 말이 새겨져 페르시아어와 바빌로니아어 및 엘람어로 쓰여 있다.

"나 크세르크세스 대왕은 왕 중의 왕이며 많은 종족의 왕이며 다리우스 대왕의 아들이다…."

이 만국의 문을 거치면 의장대 사열로가 나타난다. 길옆에 의장군인이 도열해 있는 장소가 지금도 선명하다. 사열로 오른쪽으로 큰 궁성의 터가 보인다. 높이가 20미터가 넘는 석주 십수 개가 지금도 위용을 자랑하는데 그것이 백 개나 서 있었다고 하는 백주지(百柱址)와 아파다나 궁전이 있다.

전문가들의 연구에 의하면 백주지는 조금 작은 나라의 사신이 왔을 때 왕이 접견하는 곳이고, 아파다나는 큰 나라의 사신이나 제국의 중요 인물이 왕을 알현하는 장소로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아파다나의 계단 벽면과 중앙 궁전에 새겨져 있는 부조다. 아파다나 계단의 부조에서는 조공자행렬도와 사자가 목우를 습격하는 동물투쟁도를 볼 수 있는데 아주 사실감있게 새겨져 있다. 여기서 보는 행렬도가 바로 이란의 어느 선물가게에 가도 볼 수 있는 석판 부조다. 주변국에서 말, 소, 금가락지, 향수병 및 상아를 각각 헌상하는 그림에서 고대 페르시아의 화려한 역사를 알 수 있다.

중앙 궁전 동문 입구의 부조에는 왕관을 쓴 다리우스 대왕과 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를 볼 수 있는데 대왕의 옥좌는 28명의 속국에서 온 대표들이 받들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궁전의 맨 오른쪽은 왕들이 이곳에 왔을 때 묵은 궁전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크세르크세스의 궁전이 크다. 한편, 이곳 유적지에는 조그만 박물관이 하나 있다. 이 박물관은 크세르크세스 유적지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는데 과거의 궁전을 훼손하지 않고 그것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만들어진 독특한 형태의 박물관다. 이곳 발굴 과정에서 나온 돌사자를 비롯한 여러 가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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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폴리스의 뒷산 라흐마트의 암굴묘 부조.

ⓒ 박찬운

마지막으로 꼭 봐야 할 것이 궁전의 뒷산 라흐마트의 암석에 있는 두 왕의 무덤이다.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와 3세의 무덤인데 모두가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은 암굴묘다. 이 묘의 상단에는 28국의 속국 대표들이 지고 있는 옥좌 위에 피장자가 있고, 그 앞에는 활활 타는 불이 있으며 하늘에는 선신인 아후라마즈다의 신상(이것은 앞으로 보게 될 야즈드의 아슈테가데 사원에서도 볼 수 있는 조로아스터교의 심볼이다)이 조각되어 있다. 이같은 모양의 무덤은 아래에서 보게 될 낙쉐 로스탐의 무덤과 같은 형태이나 연대적으로 보아 페르세폴리스의 무덤은 낙쉐 로스탐을 모델로 해서 만든 것이 확실하다.

나는 이곳을 시라즈 문화재관리국의 직원(말리)과 함께 두어 시간을 함께 걸으며 안내를 받았다. 그녀는 페르세폴리스를 완전히 종교적 도시로 설명하였다.

그녀의 설명에 의하면, 이 도시는 노루즈(No Ruz)라는 신년 행사를 위한 도시라는 것이다. 이 도시 바로 뒷면에 위치한 라흐마트 산 위에서 신년이 되면 화려한 불의 제전이 있었다고 한다. 이것을 위해 왕을 비롯한 많은 신민들이 이곳에 운집하였다. 왕이 오면 묵을 곳이 필요했고 여러 속주로부터 오는 사신들을 맞이하는 알현 장소가 필요했다. 고대 페르시아인들은 이러한 의식을 아주 엄숙하게 진행한 모양이다. 수많은 의장 사열대가 도열해 트럼펫의 고음을 뽐내는 과정에서 속국의 사신들은 기가 죽은 채 다리우스 대왕과 그 옆에 서 있는 황태자 크세르크세스의 위용을 보았을 것이다.

사막 한가운데서 만난 비참한 로마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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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쉐 로스탐에서 볼 수 있는 암굴묘.

ⓒ 박찬운

우리 탐사단은 페르세폴리스와 아쉽게 작별을 하고 이스파한으로 가는 간선도로에 들어섰다. 낙쉐 로스탐은 한 마디로 암굴묘군(岩窟墓群)이다. 사막 한가운데에 그리 크지 않은 바위산이 있다. 그 바위산의 한 면을 깎아 절벽 중앙에 구멍을 뚫고 묘를 만들고 그 위아래로 벽면 부조를 만들었다. 이곳에는 현재 4개의 묘가 있는데 암벽을 향해 왼쪽부터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크세르크세스 1세, 다리우스 1세, 다리우스 2세 순이다. 다만 다리우스 1세 외의 묘에 대해서는 그 주인에 대하여 이설이 있다고 한다.

이들 묘군은 앞서 본 페르세폴리스의 라흐마트 산 절벽에서 본 묘의 바로 전대에 속하는 것들로 거의 비슷한 형상을 하고 있다. 묘실 표면은 전체적으로 십자가 모양이며 상부에는 피장자가 옥좌에 앉아 있는 모습과 조로아스터교의 선신 아후라마즈다의 신상, 그리고 불꽃이 그려져 있다. 다만 이들 부조의 상태는 페르세폴리스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마모도가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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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푸르 1세에 사로 잡인 로마황제 발레리아누스.

ⓒ 박찬운

각각의 묘실 아래에는 아마도 후대 사산조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기마전투도 등이 부조되어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이 암벽 중앙인 크세르크세스 1세와 다리우스 1세의 묘실 사이에 있는 그림이다. 이는 260년 에데사에서 사로잡힌 동로마제국 황제 발레리아누스가 말 위에 앉아 있는 사산 왕 샤푸르 1세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장면이다.

말이 나왔으니 잠깐 발레리아누스에 대하여 한 마디 하자. 로마제국은 1세기 후반에서 2세기 말까지 대략 100년간 오현제 시대를 맞이하여 이른바 팍스 로마나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오현제의 마지막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이후 제국은 기울기 시작한다. 변방의 군사령관들이 어느 날 갑자기 기존 황제를 살해하고 황제가 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제국의 변경에는 이민족의 침입이 잦아졌고 그 와중에 동쪽 변방에는 아케메네스 왕조의 후예라고 일컫는 사산왕조 페르시아가 나타나 로마제국을 압박한다. 그 과정에서 군인황제 발레리아누스가 큰 맘 먹고 출정한 것이 샤푸르 1세와 한 판 붙은 에데사 전투다. 여기에서 발레리아누스가 샤푸르의 포로가 된 것이다. 전대미문의 일이었다. 로마황제가 전쟁 중에 죽는 일은 있어도 포로가 된 적은 없기 때문이다. 이 역사적 사건을 시오노 나나미는 그의 역저 < 로마인이야기 > 제12권에서 아주 리얼하게 표현한다.

"260년 새해 벽두에 뉴스 하나가 전 세계를 휘저었다. 로마 제국 전체를 두려움에 떨게 하고 제국 밖에 사는 사람들까지 놀라게 한 그 정보는 로마 황제 발레리아누스가 페르시아의 왕 샤푸르의 포로가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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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길에서는 자연스레 '지금 이 순간' 함께하고픈 상대를 떠올리게 된다. 이를테면 환상적인 섬에서는 연인을, 볼 것 많고 먹을 것 많은 도시에서는 가족이 생각날 것이다. 여자들의 女幸 시리즈의 두 번째 테마는 다른 누구보다도 '여자친구와 함께 즐기면 더 좋은 여행지'다. 볼거리가 많고, 안전하며, 여자들의 오감을 자극하는 감성적 분위기를 지닌 세 도시를 엄선했다.

글 김영미 기자 사진 트래비CB

취재협조 말레이시아관광청, 호주빅토리아주관광청, 교토시관광한국사무소



Kuala Lumpur▷▷▷
女幸을 위한 완벽 레시피

여자들의 여행지로 쿠알라룸푸르를 추천하는 이유는 '쇼핑' 하나로도 충분하다. 1년에 3차례 치러지는 쇼핑 축제와 1년 365일 만족스런 쇼핑을 즐길 수 있는 거대한 쇼핑몰은 쿠알라룸푸르의 가장 큰 매력. 거기에 다채로운 음식과 다양한 볼거리, 비교적 저렴한 여행비용까지 빠지는 구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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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리시한 젊은이들이 몰리는 루나 바의 로맨틱한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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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쿠알라룸푸르 대형 쇼핑몰들에서 1년 365일 만족스런 쇼핑을 즐길 수 있지만, 쇼퍼홀릭이라면 1년에 3번 열리는 말레이시아 쇼핑 축제에 주목할 것 3 레스토랑 안에 마련된 풀 사이드에서 우아하게 프렌치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 프랑지파니


파빌리온


'파빌리온(Pavilion)'은 '쇼핑천국', '세일천국' 쿠알라룸푸르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곳. 총 7개 층에 450여 개의 점포가 입점해 있고, '이어 엔드 세일 축제'를 맞이해 가장 화려하게 장식을 하는 곳이라 세일 축제 분위기를 느끼기에도 제격이다. 말레이시아는 사계절 여름이지만 쇼핑몰에서는 외국인 고객을 위해 겨울 의류도 판매하므로, 이어 엔드 세일 기간에 대폭 할인되는 겨울 시즌 의류를 놓치지 말 것.www.pavilion-kl.com

루나 바
퍼시픽리젠시호텔(Pacific Regency Hotel) 꼭대기층 야외에 자리하고 있는 풀사이드 라운지 바 '루나 바(Luna Bar)'는 쿠알라룸푸르를 여행하는 여성들에게 인기 만점인 나이트 스폿. 고객 대부분이 스타일리시한 젊은이들이라 '물' 좋기로 유명하다. 시원한 유리창 너머로 파르스름하게 빛나는 쿠알라룸푸르의 야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여 낭만을 더한다.www.pacific-regency.com

프랑지파니
다양한 인종이 공존하는 쿠알라룸푸르는 미식여행에 적합한 도시. 부킷빈탕에 위치한 '프랑지파니(Frangipani)'는 쿠알라룸푸르에서 가장 팬시한 프렌치 레스토랑으로, 세련된 분위기 속에서 훌륭한 프랑스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우아한 의상을 갖춰 입고 거대한 풀 사이드에 마련된 자리에서 예술작품처럼 꾸며진 요리를 즐길 때면 여행은 한층 근사해진다. 평균 60~70RM(한화 약 2만4,000원)대 이상인 메인 요리의 가격은 말레이시아의 물가와 비교했을 때 저렴한 편은 아니지만, 음식의 맛과 분위기, 서비스 등을 감안하자면 결코 비싸지 않은 수준이다.www.frangipani.com.my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Petronas Twin Tower)는 높이 452m, 88층으로 이뤄진 세계 최대의 쌍둥이빌딩이자 말레이시아의 랜드마크. 41층에 위치한 '스카이브릿지'는 두 개의 건물을 연결하는 다리이자 무료 전망대인데, 하루에 방문 가능한 인원수가 정해져 있으므로 서둘러 찾아가는 게 좋다. 이곳의 매력은 밤에 더욱 빛난다. 형언하기 힘든 신비로운 푸른빛이 환상적으로 발광하는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의 야경은 여심을 흔들기에 충분하다.www.petronastwintowers.com.my

조조바 스파
여자의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스파와 마사지가 아닐까. 쿠알라룸푸르엔 다양한 스파, 마사지 시설이 자리하고 있는데 버자야 타임 스퀘어 호텔 15층에 자리한 '조조바 스파(Jojoba Spa Kuala Lumpu)'는 쿠알라룸푸르에서 가장 큰 스파로 명성이 높다. 말레이시아 13개 주의 이름을 딴 스파 트리트먼트 룸에는 샤워 시설과 프라이빗 자쿠지가 갖춰져 있으며, 100명이 넘는 스태프들이 여행의 피로를 달큰하게 풀어 줄 별 다섯 개짜리 서비스를 선사한다.www.jojoba.com.my


Kyoto▷▷▷

전통과 현대의 이상적인 공존

손때가 타지 않은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지닌 도시, 아무 생각 없이 거리를 걷다 보면 저절로 마음이 편해지는 도시 교토. 갈 때마다 새로운 교토에서는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파는 작은 상점들을 둘러보는 재미도 솔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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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은 숍에서 아기자기한 소품을 구경하는 일은 교토 여행의 작은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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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옛 모습이 간직된 교토의 풍경은 마음을 차분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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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교토를 거닐다 보면 유카타와 기모노 체험을 하는 여성들을 쉽게 마주할 수 있다

니시진오리회관 기모노 체험
고운 기모노를 입고 교토 거리를 거니는 일은 한번쯤 도전하고 싶은 체험. 니시진오리회관은 일본 전통 직물에 대한 모든 것을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 일본 직물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박물관, 니시진 직물과 수직물 숍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곳 니시진오리회관에선 고급스런 실크로 만든 기모노, 밝고 화려한 문양의 유카타 등을 대여할 수도 있다. 반납은 오후 3시30분이지만, 약간의 추가 금액을 지불하면 다음날 오전에 반납이 가능하다. 의상 외에 주머니, 게다 등 액세서리도 함께 대여해 준다. 1층 무대에서는 하루 6~7회 기모노 패션쇼가 열린다.
www.nishijin.or.jp

호소미미술관
도시 자체가 고고한 예술과 같은 교토에서 즐기는 아트는 더욱 특별하다. 호소미미술관은 수많은 일본 걸작 미술 작품을 전시하는 곳으로,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수준급 콜렉션을 선보인다. 가마쿠라 시대의 불교 미술, 무로마치의 수묵, 에도시대 회화 등 일본 미술의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하는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계절별로 기획전을 개최해 일본 미술 명작을 소개하며, 3층 다실에서는 뜰을 바라보며 차를 마실 수도 있다.
www.emuseum.or.jp

톤다야
교토는 생활 자체가 문화다. 톤다야는 다양한 체험을 통해 진짜 교토를 만날 수 있는 살아 있는 가게. 120년이 넘은 전통가옥 관람, 최고급 비단 기모노 체험, 다도체험 등을 하며 교토의 전통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하는 공간이다. 기모노를 곱게 차려 입고 상점 안쪽의 정원과 다실, 별채를 거닐 때면 교토의 옛 시절로 타임슬립을 한 듯한 감흥에 취할 수 있다. 교토 전통 도시락도 즐길 수 있는데 하루에 20인분만 준비된다.www.tondaya.co.jp

게이분샤 이치조지텐
책방이자 갤러리이자 소품숍인 문화공간. 시내에서 살짝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어 주변 분위기도 고즈넉하다. 일반적인 서점들이 책을 서가에 빼곡하게 진열해 판매하는 것과 달리 게이분샤는 각 책들의 표지가 한눈에 보이도록 전시해 놓는다. 때문에 비치돼 있는 책의 수는 적을 수밖에 없어, 선택된 책들을 만날 수 있다. 소품숍 구역엔 자연주의 소품들이 가득한데, 가격대는 비싼 편이지만 이 집만의 리미티드 제품이 많아 그냥 지나치기가 어렵다. 고작 책방 하나 둘러보는 데에 반나절이 아깝지 않은 명물 책방이다. 075-711-5919

호시노야 리조트
여자들의 일본여행 키워드로 '료칸'이 주목받은 지 여러 해. 료칸 여행을 꿈꿔 온 이라면 럭셔리 료칸 리조트 호시노야가 2009년 12월12일 오픈한 호시노야 교토 리조트에 한번쯤 눈독을 들였을 테다. 호시노야 교토는 교토의 유서 깊은 별장 휴양지 아라시야마(嵐山)의 산중에 은둔한 비밀스럽고 호사스런 공간. '현대식 안락함을 갖춘 진정한 일본'을 콘셉트로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실용성과 디자인을 한데 버무려 리조트를 꾸몄다. 럭셔리한 휴식을 원하는 여자들에게 추천하는 곳이다. kyoto.hoshinoya.com

Melbourne▷▷▷

호주에서 만나는 유럽의 서정

멜버른은 우아하다. 중세 유럽풍의 고풍스러운 건물들과 모던한 건축물들 사이로 트램이 경쾌하게 누빈다. 도시 자체에 짙게 밴 품격, 낭만, 여유로움과 다채로운 즐길거리를 지닌 멜버른은 여자들이 100% 만족할 만한 여행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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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854년 세워진 멜버른 최초의 기차역, 플린더스 스트리트역 2 성 바오로 성당 3 멜버른은 호주에서 손꼽히는 쇼핑 천국 4, 5 뒷골목은 멜버른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멜버른다운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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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지 로드
멜버른은 호주에서 손꼽히는 쇼핑 천국이다. QV 센터, 멜버른 센트럴 등 대형 쇼핑몰부터 골목골목 숨어 있는 부티크 숍에 이르기까지 도시 전체가 거대한 쇼핑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저렴하면서도 개성 있는 아이템을 쇼핑하려면 최근 멜버니언 사이에서 주목받고 있는 리치몬드의 브리지 로드(Bridge Road)를 추천한다. 브리지 로드엔 일반 브랜드와 디자이너 부티크 등 각종 브랜드의 아울렛 몰이 들어서 있는데, 시기별로 특별 할인을 제공해 잘만 뒤지면 양질의 아이템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멜버른 뒷골목
멜버른의 진면목은 '레인웨이(Laneway)'라 불리는 멜버른 뒷골목에서 확인할 수 있다. 레인웨이는 180여 개가 넘는 작은 골목과 아케이드가 촘촘히 이어져 있는 곳으로,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골목 사이를 누비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모자랄 지경이다. 그중 플린더스 거리 안쪽에 위치한 디그레이브스 거리(Degraves Street)는 반드시 들러야 하는 명소 중의 명소. 노천카페, 디자이너 부티크와 수제 문구용품점, 액세서리숍, 컵케이크숍, 란제리숍 등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골목이다.

파리 캣 재즈 클럽
멜버른의 나이트라이프는 호주의 어느 도시보다 화려하다. 멜버른은 특히 클럽 문화가 발달해 있는데, 클럽 분위기와 음악적 취향을 고려해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다. 여자끼리의 여행이라면 재즈 클럽에서 선율에 오감을 맡기며 분위기 있는 밤을 보내는 건 어떨까. 파리 캣 재즈 클럽(Paris Cat Jazz Club)은 규모는 작지만 멜버른에서 손꼽히는 재즈 클럽으로, 매일 다른 뮤지션이 수준 높은 재즈 공연을 선사한다. 입장료는 12~20호주달러 수준이며, 퀸과 리틀 버크가 만나는 곳에 자리했다.www.pariscat.com.au

모닝톤 페닌슐라

멜버른에서는 빅토리아주의 다양한 관광지로 데이투어를 떠날 수 있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선택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여자들끼리 여행이라면 단연 모닝톤 페닌슐라(Mornington Peninsula)를 추천한다. 멜버니언들이 사랑하는 휴양지 중 한 곳인 모닝톤 페닌슐라는 와이너리, 과일 농장, 아름다운 해변 등이 어우러진 지역이다. 11~4월에 모닝톤 페닌슐라를 여행한다면 호주 최대의 딸기 농장인 써니 리지 딸기 농장에서 딸기 수확 체험을 하며 신선한 딸기를 실컷 맛볼 수 있다.www.sunnyridge.com.au

코코블랙
달콤하고 로맨틱한 것을 좋아하는 멜버니안들은 초콜릿을 유난히 사랑한다. 멜버른에서 가장 유명한 초콜릿 카페 '코코블랙(Koko Black)'에서 멜버니안들의 달콤한 입맛을 엿보자. 이 집에서 손으로 직접 만드는 수제 초콜릿들은 너무 예뻐서 먹기 아까울 정도. 코코블랙에서 특히 유명한 메뉴인 핫 초콜릿은 너무 달지 않으면서 진한 초콜릿 향기를 느낄 수 있다. 코코블랙은 로얄 아케이드 본점과 멜버른 시내와 근교에 여러 개의 분점을 보유하고 있다. 여행으로 지친 다리를 잠시 쉬어 가도 좋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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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박우철 기자

오로라 출몰 지역은 북위 66도 33분, 남위 66도 30분 이상에 있다. 그래서 오로라는 북극권에서 노던라이트Northern Lights, 남극권에서는 서던라이트Southern Light라고 한다. 노던라이트, 서던라이트는 기후학이나 천문학에서 쓰는 말로 다양한 색깔의 빛이 하늘에 띠 모양으로 펼쳐지는 현상을 지칭한다. 오로라의 발생 원인은 정확히 규명되지 않았지만 태양에서 날아온 에너지가 극관을 통해 지구상으로 유입되는 과정에 발생된다는 게 정설이다. 오로라는 '극광'이라는 자연현상 이상으로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오로라를 보고 임신을 하면 천재를 낳는다'라는 속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오로라는 신비로운 현상에 대한 숭배의 의미를 담기도 한다. 사람들은 오로라는 평생에 한 번 보기도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나 날짜와 지역만 잘 선택하면 3대가 덕을 쌓지 않아도 오로라를 관측할 수 있다. 다만 장거리 비행을 견뎌낼 체력과 얼어 죽지 않기 위한 방한복만 갖춘다면 말이다.

캐나다 명당 옐로우 나이프
캐나다에서도 오로라 명당으로 꼽히는 곳은 노스웨스트 준주의 주도 옐로우 나이프Yellow Knife다. 이곳에서는 11월부터 다음해 4월까지 오로라를 관측할 수 있는데 특히 12월부터 2월까지가 가장 이상적인 시기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도 오로라 관측은 복불복이다. 당일 기온과 바람, 달빛의 밝기에 따라 오로라의 강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옐로우 나이프에서 오로라를 봤다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사전에 인터넷(www.theweathernetwork.com)에서 현지 조건을 체크해 가능성을 높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캐나다 오로라 상품이 매년 출시된다. 한국에서 출발하는 상품의 대부분은 화장실, 레스토랑 등 편의 시설이 갖춰진 오로라 빌리지Aurora Village(www.auroravillage.co.kr)에서 이뤄진다. 관측시간은 오후 8시부터 새벽 1시까지이다. 캐나다 오로라 체험 상품의 가격은 항공료, 숙박 등을 포함해 200만원 후반이 될 전망이다.

노르웨이 명당 트롬소
노르웨이 북부의 트롬소는 유럽의 오로라 명당이다. 트롬소에서 오로라를 힘 안 들이고 보려면 오로라 관측 투어Northern Light Safari에 참가하는 게 좋다. 이 버스 투어는 매일 저녁 오후 6시30분, 트롬소 리카 이샤브스호텔Rica Ishavshotel에서 출발한다. '명당'을 꿰고 있는 전문 가이드가 동행해 확률을 높인다. 트롬소에서는 보통 오후 1시부터 해가 저문다. 오로라 관측 투어가 출발하는 오후 6시 경은 이미 한밤중이다. 이때부터 오로라가 가장 자주 출몰한다는 11시까지 투어가 이어진다. 트롬소의 야간 온도는 대략 영하 20~30도 정도. 체감온도는 그 이상이다. 따라서 두터운 방한복과 장갑, 두꺼운 신발은 필수. 오로라 관측 투어의 요금은 1인당 850NOK노르웨이 크로네·우리돈 17만원 정도이며, 매년 10월15일부터 다음해 3월31일까지만 운영된다.
www.arcticguideservic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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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트롬소에서 오로라 관측투어에 참가해 촬영한 오로라 사진 Ⓟ박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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