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철 최고의 활동은 등산이다. 하지만 등산에 부담을 갖는 사람도 많다. 높은 산을 오르기에 체력도 받쳐주지 않고, 산이 있는 곳까지 이동하려니 여간 힘든게 아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등산 대신 트레킹을 선호하기도 한다. 서울시내에는 다양한 걷기 코스가 있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느낄 수 있는 길도 있고, 아름다운 단풍길을 즐길 수 있는 길도 있다. 시내에 있는 걷기 코스가 좋은 점은 퇴근 후에도 부담 없이 쉽게 들를 수 있다는 점이다.

◆ 인사동 미술거리

(경복궁역-청와대 앞길-경복궁 신무문-인사동 특화문화거리-탑골공원-종로3가역)

- 거리 약 4.5km

- 시간 약 1시간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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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 쌈지길 입구

조선시대에 근대적 다운타운이 형성되기 시작한 곳이 인사동과 종로통이다. 인사동은 특히 조선시대의 궁궐 미술가들의 일터이자 미술전문학교라 할 수 있는 도화서가 근처에 있어 김홍도, 신윤복 등 도화서 관료나 학생들이 이 길을 들락거리면서 자연스럽게 미술 거리로 형성됐고 그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인사동이 예전에 비해 음식점, 카페가 많아져 본래 갖고 있던 정취가 많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수많은 간판에 가려 있을 뿐 여전히 많은 미술관과 박물관이 인사동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따라서 인사동을 걸을 때는 조선미술학 근현대사의 희로애락이 녹아 있는 면면을 살피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인사동 거리를 걷노라면 다양한 풍물들을 구경할 수 있다. 거리 곳곳에서 한국의 문화를 경험하는 것도 이곳만의 특권이다. 골목마다 기념품점이며 공예집들이 빼곡해 길을 잃고 해매도 여전히 즐거운 길이다. 도보 끝의 탑골공원에선 조용히 산책을 즐기며 도보여행에 지친 몸을 잠시 쉴 수도 있다.

동대문 서울 성곽길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동대문역사문화공원-청계천-흥인지문-낙산성곽길-마로니에공원-4호선 혜화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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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공원 성곽길에서는 서울 시내를 시원하게 내려다 볼 수 있다- 거리 약 3.4km

- 시간 약 1시간30분

동대문 서울성곽길은 서울성곽길 2코스인 장충체육관에서 낙산공원까지의 코스 가운데 신당동 구간을 뺀 루트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안에는 그냥 지나치기 아쉬운 전시관, 조선시대 유적, 동대문야구장의 추억거리가 많이 있다. 걷는데만 집작하지 말고 이런저런 볼거리를 체험해 가면서 움직일 만한 코스다.

이 루트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손쉽게 접근이 가능하며, 서울 성곽 구간 중에서 가장 편안하고 정비가 잘된 산책 코스다. 성곽을 따라 잘 정비된 산책로를 거닐다 저녁 무렵 서울의 몽마르트르 언덕으로 불리는 낙산공원에 오르면 동서남북으로 시야가 탁 트여 인왕산, 남산, 도봉산 등 도심의 명산과 고층빌딩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성곽 안쪽 길에는 이화동 벽화마을의 길거리 갤러리를 감상할 수 있어 볼거리를 더한다. 혜화동으로 내려가면 마로니에공원, 대학로 등 에너지 넘치는 풍경과도 만날 수 있다. 야경을 즐기려면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서 6시30분쯤 출발하는 게 좋다.

◆ 광개토대왕길

(아차산역-아차산 생태공원-광개토대왕길-용마산 제2헬기장-용마폭포공원-용마산역)

- 거리 약 7.9km

- 시간 약 3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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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생태공원에서 체험활동을 펼치는 아이들

광개토대왕길 봄·여름·가을·겨울 내내 도보 여행자들이 몰리는 곳이다. 봄에는 왕벚꽃이, 여름에는 신록 우거진 숲이, 가을에는 단풍이, 겨울에는 설경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코스의 대부분은 아차산 안에 있다. 아차산에는 고구려 유적이 많은데, 이 길의 이름이 '광개토대왕길'로 명명된 것도 그 때문이다. 아차산은 해발 287m로 평평한 능선을 따라 걸으면 등산과 산책의 중간쯤 되는 난이도를 체험할 수 있다.

고구려 군사 주둔지였던 보루가 복원돼 있고, 코스 시작 부분에 고구려 역사문화 홍보관과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동상 등도 있어 고구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가을이면 아차산 능선에서 보이는 한강 둔치의 코스모스 물결이 장관이다. 산은 낮아도 주변 일대가 평지라 정상에서 보이는 한강과 어우러진 도심의 야경은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이정구 기자 < bupdorijoongang.co.kr >

이정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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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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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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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퓨어아레나의 등심스테이크 비빔밥 / 한옥을 개조한 레스토랑 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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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가을이면 경복궁·창덕궁·창경궁·덕수궁에는 관광객들이 붐비는 반면, 경희궁은 단풍이 절정인 이 시기에도 사색을 즐길 수 있을 만큼 한적하다. 주변에 박물관과 미술관이 있어 연계한다면 머리와 가슴을 살찌우는 코스가 될 수 있다.

■짤막한 코스, 호젓한 산책로 만날 수 있는 곳


경희궁둘레길은 약 1km 코스로 천천히 걸어도 15~20분이면 다 돌아볼 수 있을 만큼 짧다. 코스도 숭정문 오른쪽 담장길부터 시작해 시계 방향으로 돌아 내려오면 될 정도로 단순하다. 걷는 동안 도심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호젓함을 만끽할 수 있다. 코스의 중간 지점인 자정전 뒤편 언덕은 경희궁을 뒤에서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 포인트다. 언덕에 서면 가까이 서울 신문로 인근의 빌딩숲에서부터 멀리 남산의 서울N타워까지 조망할 수 있다. 단풍이 소복히 쌓인 언덕 공터의 벤치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른 후 걷던 방향으로 내려오면 서울역사박물관 중정(中庭)과 만난다. 걷기를 이쯤에서 끝내는 게 아쉽다면 인근에 있는 성곡미술관길(신문로2가)을 걷거나 강북삼성병원 안쪽길로 진입해 교남동으로 이어지는 서울한양도성길을 걷는 방법이 있다.

■카페·맛집 모여 있는 성곡미술관길


경희궁의 왼쪽성곡미술관(02-737-7650)이 있는 성곡미술관길에는 맛집과 분위기 좋은 카페가 오밀조밀 몰려 있다. 커피 맛이 좋기로 소문난 카페커피스트(coffeest, 02-773-5555)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찾던 이 길은 최근 맛과 분위기를 고루 갖춘 카페나 와인바, 레스토랑들이 문을 열면서 트렌드세터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그중 '광화문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는퓨어아레나(PUREARENA, 02-3210-9787)는 PR컨설팅그룹 플레인에서 운영하는 카페 겸 레스토랑이다. 웹툰 '스노우캣'의 권윤주 작가가 아트디렉터로 참여해 꾸민 공간은 구석구석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전시품 중에는 박지성의 축구공, 김연아의 스케이트, 장미란의 벨트도 있다. 인기 메뉴는 주방장 특제 불고기 소스를 넣은 등심스테이크비빔밥(1만6000원). 고슬고슬한 밥 위에 그릴 자국이 선명한 소등심과 아삭한 무생채, 어린잎채소들을 곁들여 낸다. "매주 수요일 스페셜 메뉴로 사시미덮밥(1만5000원)도 판매하는데 요리에 사용되는 모든 생선은 강남 유명 일식집인 다까시마의 이승익 조리장이 직접 엄선한 것"이라는 게 임성준(29) 매니저의 말이다.

성곡미술관 앞단아(丹亞, 02-738-1966)는 한옥을 개조한 퓨전 레스토랑이다. 요리작가이자 단아의 오너 셰프인 안충훈(38)씨가 만들어내는 퓨전 파스타와 스테이크 등을 맛볼 수 있다. 나란히 있는 로스팅&핸드 드립 커피 전문점카페 크렘(cafe creme, 02-722-1080)은 2층 가정집을 카페로 개조한 곳으로 2층 창가 자리에선 단아의 기와지붕이 내려다보여 운치 있다.

■미술관·갤러리·박물관 관람은 덤


경희궁이 있는 신문로 일대에는 미술관과 갤러리, 박물관들이 모여 있다. 성곡미술관 외 대부분 무료 관람이라 부담 없이 둘러볼 수 있다. 높이 22m의 대형 야외 조각품인 '해머링맨(Hammer ing Man)'이 설치돼 있는 흥국생명빌딩 3층엔일주&선화갤러리(02-2002-7777)가 관람객을 맞는다. 이곳은 선화문화예술재단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12월 30일까지 '한국 현대미술 연속기획전-황금 DNA'를 연다. 총 8회로 진행되는 이 전시회는 국내외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30~40대 작가 16명이 2명씩 짝을 이뤄 동일한 주제로 만든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다. "첫 전시인 '황금 DNA'는 동양화 전공 후 전통 초상화 기법과 재료를 이용해 현대적 인물화를 그리는 김정욱 작가와 서양화 전공 후 서양 고전주의 작가들의 작품 이미지를 차용한 '화가의 옷(Costume of Painters)'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는 배준성 작가의 작품을 통해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 배경과 가치관 등을 비교해보는 전시"라는 게 최문정(35) 큐레이터의 설명이다.

서울의 역사와 문화 관련 자료를 전시하고 있는서울역사박물관(02-724-0274)에선 11월 9일부터 내년 1월 20일까지 '정동 1900'전을 연다. 대한제국의 주요 공간이면서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지역이었던 1900년 전후 정동을 돌아보는 전시다. 어린 자녀와 함께라면 경희궁 흥화문 부근경찰박물관(02-3150-3681)이나농업박물관(02-2080-5727)도 가볼 만하다.

글 박근희 기자 | 사진 장은주 기자 | 일러스트 손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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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살아 숨쉬는 증도의 갯벌은 유네스코로부터 생물권 보전 지역으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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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도에서는 이른 아침 그물을 걷으러 앞바다로 나가는 어부가 노를 젓는 속도마저 느릿느릿 급할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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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물 때는 갯벌에서 뛰노는 짱뚱어와 집게다리를 높이 들고 주인 행세를 하는 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슬로시티 증도-"그 섬에 가면 느리게 걸어 보세요"


우리나라는 반도국가지만 '섬들의 나라'이기도 하다. 인도네시아에는 1만개가 넘는 섬이 있고, 필리핀에는 7,000개, 그리스에는 6,000개가 넘는 섬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도 3,000여 개의 섬이 있으니 숫자상으로 크게 뒤질 바 없고, 점점이 흩어진 섬들이 가진 비경은 그 나름대로 충분히 아름답다. 바삐 굴러가는 일상에 지쳐 자연 속에서 몸과 마음의 깊은 안식을 구하는 현대인들에게 섬은 더할 나위 없는 여행지가 된다. 외진 섬은 다소 불편하고 고립감이 느껴지지만 뭍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자연과 생활방식을 경험할 수 있어서 더욱 매력적이다. '슬로시티'로 지정된 증도에서 가장 인간적이고, 자연적인 섬 여행의 매력을 느껴 보자.

글·사진 최승표 기자

취재협조 전남대학교 생태관광연구센터 062-530-4087

속도에 지친 현대인들을 위한 '섬'

공정여행, 책임여행, 대안관광 등의 개념이 최근 들어 자주 회자되고 있다. 기존의 여행이 불공정하고 무책임하기라도 했다는 말일까? 소비적이고 천편일률적인 여행에 사람들이 지친 까닭일 테다. '옛 것'으로 회귀하고픈, '낯선 공간'으로 도피하고픈 인간의 욕구는 문명이 발달할수록 더해져 간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가장 적합한 곳은 '섬'이라는 공간이다.

3,000개가 넘는 우리나라의 섬 중에서도 슬로시티로 지정된 전남 신안의 증도는 예스럽고, 낯선 것을 찾는 여행자의 욕구를 가장 훌륭히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섬이라 할 만하다. '슬로시티' 운동은 이탈리아 로마에서 맥도날드의 상륙을 반대하는 풀뿌리 운동으로 시작됐으며, 지금은 국제적인 조직망까지 갖추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증도와 함께 완도군 청산면, 장흥군 유치면, 담양군 청평면, 하동군 악양면, 예산군 대흥면이 인증을 받았다. 이중에도 증도는 아시아에서 최초로 지정된 슬로시티로서 이름처럼 '느린 마을'의 요건을 충실히 갖추고 있다. 지난해에는 유네스코에서 갯벌과 독특한 생태자원을 간직한 증도를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증도는 전라남도 신안군에 있는 점점이 흩어진 1,004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다. 섬이라고 하지만 지난 3월 지도읍과 증도면을 잇는 증도대교가 개통되면서 자동차로 통행이 가능해졌고, 이로 인해 지난 9월까지 이미 지난해의 2배에 달하는 60만명이 방문했을 정도로 대중적인 여행지로 떠오르고 있다.
허나 대다수 여행객들은 '추천명소'라고 불리는 몇몇 관광지에 눈도장을 찍고는 도시로 돌아간다. 엄밀히 말해 느릿느릿 여행할 때 더 매력적인 증도의 진면목을 절반도 느껴 보지도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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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시티 증도의 진면목을 경험하고 싶다면 현지인들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 보자'. 천사의 섬'답게 증도 사람들의 마음은 넉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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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염전에 위치한 염생식물원에는 뭍에서 볼 수 없는 다종의 식물이 분포한다. 독특한 생태를 간직한 증도는 체험여행, 교육여행에 최적의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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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0m에 달하는 짱뚱어다리에서는 썰물 때 갯벌에 서식하는 짱뚱어와 게들을 볼 수 있으며, 일몰시에는 장관을 감상할 수 있는 명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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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박물관에서는 소금의 역사부터 소금을 테마로 한 다양한 볼거리가 갖춰져 있다

염전과 갯벌' 도시인들이 열광하는 증도의 아이콘

증도가 간직한 가장 큰 매력은 염전과 갯벌로 압축된다. 단일 염전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460만 평방미터의 태평염전은 1953년 전증도와 후증도 사이의 갯벌을 막아 형성된 간척지로 연간 1만5,000톤의 소금을 생산하고 있다. 증도를 찾는 이라면 빼놓지 않는 곳이다. 이곳에서 생산된 천일염은 전국 생산량의 6%에 달하고, 소금의 질은 최고로 손꼽힌다. 김장용부터 조리용까지 다양한 종류의 천일염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방문객들이 소금을 직접 제작해 보는 체험을 할 수도 있다.

국내 최초로 개장한 태평염전 내의 갯벌 습지는 다양한 종류의 염생식물과 갯벌 생물을 구경할 수 있는 자연의 보고다. 함초, 나문재, 칠면초, 해홍나물 등은 육지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희귀식물이다. 형형색색의 염생식물과 60여 채의 소금창고가 어우러진 풍경은 이제 우리나라에서 쉽게 만나 볼 수 없는 비경을 연출한다.

태평염전의 입구에는 소금창고를 개조한 소금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소금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역사를 소개하고 있으며, 소금에 얽힌 인간 생활사까지도 살펴볼 수 있어 방문객이 꾸준히 늘고 있다. 태평염전은 소금을 테마로 소금레스토랑, 소금동굴힐링센터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 또한 증도에서만 체험이 가능한 것들이다. 올해 문을 연 소금동굴힐링센터는 호흡기질환과 피부병에 좋은 소금을 이용한 시설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등에서 이미 대중화된 시설이다.

전국 갯벌의 50%가 사라진 만큼 증도의 갯벌은 그 가치가 더욱 빛나고 있다. 도립공원,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된 갯벌에는 만화 캐릭터처럼 생긴 짱뚱어들이 뛰놀고, 두 눈을 곧추세운 게들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갯벌 위에 떠 있는 '짱뚱어다리'도 증도의 명물 중 하나다. 증도면사무소 방향에서 짱뚱어다리를 건너면 짱뚱어해수욕장, 우전해수욕장이 나타나고 이곳에서는 잿빛 갯벌이 노을에 붉게 물드는 환상적인 일몰을 감상할 수 있다.
태평염전│주소 전남 신안군 증도면 증동리 1931번지 주변 볼거리 염전 주변에는 소금박물관, 염생식물원, 소금동굴힐링센터 등이 밀집해 있다 문의 061-275-0370
www.saltmuseum.org


'느릿느릿' 증도의 시간 만끽하기

슬로시티를 여행하려면 마음만 느긋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여행지에 사는 주민들의 삶의 속도에 동화되는 적극성을 발휘해야 섬의 매력을 온몸으로 만끽할 수 있다. 여행자가 보다 적극적으로 느릿한 섬의 생활에 어울릴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도보 여행'이다.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에 뒤지지 않을 증도의 도보여행 코스가 있으니 바로 '모실길'이다. 마라톤 코스에 가까운 40여 킬로미터에 달하는 모실길은 증도의 해안을 따라 테마별로 5개 코스로 이뤄져 있다. 노을이 아름다운 사색의 길(10km), 보물선 순교자 발자취길(7km), 천년의 숲길(4.6km), 갯벌공원길(10.3km), 천일염길(10.8km)까지 저마다 다른 사연을 간직한 길들을 걷는 재미가 여느 섬의 산책길과는 다르다.

700년 전의 해저유물이 1976년 발굴된 것을 기념해 지어진 해저유물기념관 '700년전의 약속'은 당시의 배 모양을 본따 언덕 위에 만들어졌다. 이곳에는 당시의 도자기 및 유물이 전시되어 있고, 근사한 카페도 있으니 해안길을 산책하다 잠시 들러 쉬기에 좋다. 한국 최초의 여성 기독교 순교자가 나온 증도는 주민의 80% 이상이 기독교인이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토테미즘이 강한 일반적인 해안지방과 분위기가 다른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증도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것은 엘도라도리조트다. 해외의 고급 리조트 못지않은 분위기를 자랑하는 이 리조트가 증도의 명물인 것은 분명하지만 증도가 간직한 호젓한 매력과는 다소 동떨어진 공간이다. 오히려 전통가옥의 뜨끈뜨끈한 온돌에서 휴식을 취하고, 주인집에서 차려주는 남도식 백반을 즐기는 게 어울린다. 드라마 <고맙습니다>의 촬영지로 유명해진 화도에 위치한 에벤에셀민박은 최근 신축한 한옥 민박집과 지역에서도 소문난 가정식 백반으로 인기가 많다. 주인이 '직접' 논밭에서 기른 쌀과 배추, 고추와 주인이 '직접' 바다에서 잡아온 낙지, 농어 등으로 한 상 가득 차려진 밥상에는 따뜻한 정까지 담겨 객들의 영혼까지 배부르게 해준다. 소금의 맛이 탁월한 까닭에 사소한 밑반찬 하나까지 꿀맛이다.
에벤에셀 민박│주소 신안군 증도면 대초리 화도 1852-2 문의 061-261-5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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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증도에서는 호남 음식의 진수를 경험할 수 있다. 낙지를 볏짚에 말아 구워낸 낙지호롱의 맛은 일품이다 2 슬로시티 여행의 진면목을 경험하고 싶다면 호화로운 리조트가 아니라 현지인들의 일상과 어울려야한다. 훈훈한 한옥집 민박에서 보내는 밤이야말로 호젓한 시간이다 3 증도는 숱한 사연을 간직한 섬이다. 700년 전 침몰했던 보물섬의 유적을 복원한'700년 전의 약속'은 새로운 증도의 명물이다


▶interview

전남대 강신겸 교수
"섬에서 걷고 배우고 나누자"

'환경에 영향을 적게 미치는 여행, 지역에 도움이 되는 여행, 즐겁게 배우는 여행'을 지향하는 섬 여행 학교는 여행사에서, 지자체에서 추진한 것이 아니다. '섬 여행 전도사'를 자처한 전남대학교 강신겸 교수는 "현대인들이 여행을 떠날 때 동경하는 모든 것들이 전라도의 섬에 있다"며 "단순히 슬로시티로서 증도가 유명세를 타고, 방문객이 늘어나는 것으로는 여행객과 관광지 주민, 자연이 상생하는 '지속가능한 관광'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가 지향하는 새로운 개념의 섬 여행을 증도에 대입해보면 태평염전과 엘도라도리조트 같은 몇몇 관광 아이콘으로 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것은 '슬로시티'의 개념과 괴리감이 있다. 섬 입구에 차를 내려놓고 두 발과 무공해 교통수단을 이용하며, 주민들이 운영하는 민박에 머무는 것이 진정한 슬로시티 여행법이다. 여기에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바다 쓰레기를 여행객들이 직접 치우고, 섬 곳곳에 자원봉사자들이 예술품을 전시하는 '나눔의 문화'를 확산시키는 것도 섬 여행 학교의 과제다.

강 교수는 "제주 올레의 사례에서 보듯 사람들은 이제 소비 지향적이고, 천편일률적인 여행보다는 여유롭고 자연 친화적인 여행을 원한다"며 "무궁무진한 전라도 섬의 관광자원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연구하고, 지역 주민들과 머리를 맞대며 섬 여행의 트렌드를 형성해 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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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박찬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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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폴리스의 전경.

ⓒ 박찬운

페르세폴리스는 시라즈에서 이스파한으로 가는 간선도로를 타고 약 70여 킬로미터를 가는 곳에 있다. 이곳은 통상 아케메네스 왕조의 수도로 알려진 곳이나 좀 더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아케메네스는 수도를 행정적 수도와 왕이 사는 왕도(또는 종교적 수도)로 나누어 운영한 것으로 보인다. 즉 이 왕조를 연 키루스 대왕은 바빌로니아의 옛 수도였던 수사를 행정적 수도로 정하였으나 왕이 사는 왕도로는 파사르가데를 새로이 만든다. 그 뒤 다리우스 1세는 왕도를 파사르가데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신도시 페르세폴리스로 옮긴다.

페르세폴리스는 아케메네스의 최전성기인 다리우스 1세 시절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그의 손자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BC 469년) 때 완성된 도시다. 이곳은 알렉산더의 원정 때 그의 군대가 술을 마시며 저지른 방화로 완전히 전소되었다고 한다.

어떻게 이런 거대 대리석 궁전이 하룻밤의 불로 주저앉을 수가 있었을까. 전문가들은 그에 대한 해답으로 당시 이 궁전의 기둥은 모두 석주였지만 지붕은 통나무였을 것이라는 설명을 한다. 따라서 지붕에 불이 붙자 그것과 연결된 모든 부속품들은 녹아서 궁전 전체가 주저앉았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마치 9·11 사태 때 뉴욕의 월드트레이드 빌딩이 녹아서 무너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페르세폴리스는 지난 2000년 이상 땅속에 파묻혀 있다가 1931년 미국 시카고 대학의 동방연구소 고고학팀에 의해서 발굴됨으로써 세상에 그 존재가 알려졌다.

'왕 중의 왕' 다리우스의 흔적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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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폴리스의 그 유명한 조공행렬도.

ⓒ 박찬운

그럼 지금부터 현재 남은 이 궁전의 모습을 설명해 보자. 우선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궁전 입구 계단을 올라오면 만국의 문을 만나게 된다. 아케메네스 왕조의 번성기에는 외국의 사신이 이곳을 방문하면 계단의 맨 위에서 우렁찬 트럼펫이 울렸다고 한다. 그러면 사신을 맞이하는 영접사가 나가 사신을 맞이하여 만국의 문으로 안내한다. 이들이 들어 오는 문 양편에는 돌로 만든 목우상과 사람의 얼굴에 날개 달린 짐승 몸뚱이를 한 유익인면수신상(有翼人面獸身像)이 나타난다.

이 날개에는 크세르크세스 1세의 말이 새겨져 페르시아어와 바빌로니아어 및 엘람어로 쓰여 있다.

"나 크세르크세스 대왕은 왕 중의 왕이며 많은 종족의 왕이며 다리우스 대왕의 아들이다…."

이 만국의 문을 거치면 의장대 사열로가 나타난다. 길옆에 의장군인이 도열해 있는 장소가 지금도 선명하다. 사열로 오른쪽으로 큰 궁성의 터가 보인다. 높이가 20미터가 넘는 석주 십수 개가 지금도 위용을 자랑하는데 그것이 백 개나 서 있었다고 하는 백주지(百柱址)와 아파다나 궁전이 있다.

전문가들의 연구에 의하면 백주지는 조금 작은 나라의 사신이 왔을 때 왕이 접견하는 곳이고, 아파다나는 큰 나라의 사신이나 제국의 중요 인물이 왕을 알현하는 장소로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아파다나의 계단 벽면과 중앙 궁전에 새겨져 있는 부조다. 아파다나 계단의 부조에서는 조공자행렬도와 사자가 목우를 습격하는 동물투쟁도를 볼 수 있는데 아주 사실감있게 새겨져 있다. 여기서 보는 행렬도가 바로 이란의 어느 선물가게에 가도 볼 수 있는 석판 부조다. 주변국에서 말, 소, 금가락지, 향수병 및 상아를 각각 헌상하는 그림에서 고대 페르시아의 화려한 역사를 알 수 있다.

중앙 궁전 동문 입구의 부조에는 왕관을 쓴 다리우스 대왕과 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를 볼 수 있는데 대왕의 옥좌는 28명의 속국에서 온 대표들이 받들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궁전의 맨 오른쪽은 왕들이 이곳에 왔을 때 묵은 궁전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크세르크세스의 궁전이 크다. 한편, 이곳 유적지에는 조그만 박물관이 하나 있다. 이 박물관은 크세르크세스 유적지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는데 과거의 궁전을 훼손하지 않고 그것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만들어진 독특한 형태의 박물관다. 이곳 발굴 과정에서 나온 돌사자를 비롯한 여러 가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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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폴리스의 뒷산 라흐마트의 암굴묘 부조.

ⓒ 박찬운

마지막으로 꼭 봐야 할 것이 궁전의 뒷산 라흐마트의 암석에 있는 두 왕의 무덤이다.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와 3세의 무덤인데 모두가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은 암굴묘다. 이 묘의 상단에는 28국의 속국 대표들이 지고 있는 옥좌 위에 피장자가 있고, 그 앞에는 활활 타는 불이 있으며 하늘에는 선신인 아후라마즈다의 신상(이것은 앞으로 보게 될 야즈드의 아슈테가데 사원에서도 볼 수 있는 조로아스터교의 심볼이다)이 조각되어 있다. 이같은 모양의 무덤은 아래에서 보게 될 낙쉐 로스탐의 무덤과 같은 형태이나 연대적으로 보아 페르세폴리스의 무덤은 낙쉐 로스탐을 모델로 해서 만든 것이 확실하다.

나는 이곳을 시라즈 문화재관리국의 직원(말리)과 함께 두어 시간을 함께 걸으며 안내를 받았다. 그녀는 페르세폴리스를 완전히 종교적 도시로 설명하였다.

그녀의 설명에 의하면, 이 도시는 노루즈(No Ruz)라는 신년 행사를 위한 도시라는 것이다. 이 도시 바로 뒷면에 위치한 라흐마트 산 위에서 신년이 되면 화려한 불의 제전이 있었다고 한다. 이것을 위해 왕을 비롯한 많은 신민들이 이곳에 운집하였다. 왕이 오면 묵을 곳이 필요했고 여러 속주로부터 오는 사신들을 맞이하는 알현 장소가 필요했다. 고대 페르시아인들은 이러한 의식을 아주 엄숙하게 진행한 모양이다. 수많은 의장 사열대가 도열해 트럼펫의 고음을 뽐내는 과정에서 속국의 사신들은 기가 죽은 채 다리우스 대왕과 그 옆에 서 있는 황태자 크세르크세스의 위용을 보았을 것이다.

사막 한가운데서 만난 비참한 로마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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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쉐 로스탐에서 볼 수 있는 암굴묘.

ⓒ 박찬운

우리 탐사단은 페르세폴리스와 아쉽게 작별을 하고 이스파한으로 가는 간선도로에 들어섰다. 낙쉐 로스탐은 한 마디로 암굴묘군(岩窟墓群)이다. 사막 한가운데에 그리 크지 않은 바위산이 있다. 그 바위산의 한 면을 깎아 절벽 중앙에 구멍을 뚫고 묘를 만들고 그 위아래로 벽면 부조를 만들었다. 이곳에는 현재 4개의 묘가 있는데 암벽을 향해 왼쪽부터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크세르크세스 1세, 다리우스 1세, 다리우스 2세 순이다. 다만 다리우스 1세 외의 묘에 대해서는 그 주인에 대하여 이설이 있다고 한다.

이들 묘군은 앞서 본 페르세폴리스의 라흐마트 산 절벽에서 본 묘의 바로 전대에 속하는 것들로 거의 비슷한 형상을 하고 있다. 묘실 표면은 전체적으로 십자가 모양이며 상부에는 피장자가 옥좌에 앉아 있는 모습과 조로아스터교의 선신 아후라마즈다의 신상, 그리고 불꽃이 그려져 있다. 다만 이들 부조의 상태는 페르세폴리스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마모도가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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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푸르 1세에 사로 잡인 로마황제 발레리아누스.

ⓒ 박찬운

각각의 묘실 아래에는 아마도 후대 사산조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기마전투도 등이 부조되어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이 암벽 중앙인 크세르크세스 1세와 다리우스 1세의 묘실 사이에 있는 그림이다. 이는 260년 에데사에서 사로잡힌 동로마제국 황제 발레리아누스가 말 위에 앉아 있는 사산 왕 샤푸르 1세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장면이다.

말이 나왔으니 잠깐 발레리아누스에 대하여 한 마디 하자. 로마제국은 1세기 후반에서 2세기 말까지 대략 100년간 오현제 시대를 맞이하여 이른바 팍스 로마나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오현제의 마지막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이후 제국은 기울기 시작한다. 변방의 군사령관들이 어느 날 갑자기 기존 황제를 살해하고 황제가 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제국의 변경에는 이민족의 침입이 잦아졌고 그 와중에 동쪽 변방에는 아케메네스 왕조의 후예라고 일컫는 사산왕조 페르시아가 나타나 로마제국을 압박한다. 그 과정에서 군인황제 발레리아누스가 큰 맘 먹고 출정한 것이 샤푸르 1세와 한 판 붙은 에데사 전투다. 여기에서 발레리아누스가 샤푸르의 포로가 된 것이다. 전대미문의 일이었다. 로마황제가 전쟁 중에 죽는 일은 있어도 포로가 된 적은 없기 때문이다. 이 역사적 사건을 시오노 나나미는 그의 역저 < 로마인이야기 > 제12권에서 아주 리얼하게 표현한다.

"260년 새해 벽두에 뉴스 하나가 전 세계를 휘저었다. 로마 제국 전체를 두려움에 떨게 하고 제국 밖에 사는 사람들까지 놀라게 한 그 정보는 로마 황제 발레리아누스가 페르시아의 왕 샤푸르의 포로가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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