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의 수도 프라하에서 90㎞ 정도 떨어진 조용한 소도시 플젠. 해외 여행 마니아가 아니라면 들어보지도 못했을 플젠은 매년 8월 말만 되면 체코의 어느 곳보다도 뜨겁고 열정적인 도시로 변한다.
플젠에 열정이라는 '마법'을 거는 주인공은 다름 아닌 체코 최대의 맥주축제 '필스너 페스트'다. 매년 8월 말 플젠에서 필스너 페스트가 열리는 순간만큼은 플젠을 넘어 체코 전역을 '옥토버 페스트'가 열리는 독일 부럽지 않은 곳으로 만들어준다.
체코인들의 맥주 사랑은 일반 사람들의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대단하다. 한국인의 식사에 김치와 찌개가 빠지지 않는 것처럼 체코인들의 식사에는 결코 맥주가 빠지지 않는다. 주식으로 먹는 빵과 돼지고기 요리만 봐도 금세 배가 부를 것 같지만 체코인들의 위장은 지치지도 않는지 끊임없이 맥주와 함께한다.
이 같은 체코인들의 맥주 사랑이 그대로 발현되는 것이 필스너 페스트다. 필스너 페스트만의 열기를 느껴보기 위해 플젠을 찾은 건 지난달 초다. 한창 한국이 태풍으로 고생했던 시기다.
세계 최대 규모의 맥주 축제인 독일 뮌헨의 옥토버 페스트보다는 규모가 작은 것이 필스너 페스트다. 하지만 맥주를 사랑하는 전 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는 점은 다르지 않았다.
러시아, 슬로바키아 등 동유럽을 넘어 중국, 일본 등 아시아에서도 찾아온 사람들이 눈에 띄었으니 그야말로 체코를 넘어 세계의 맥주 축제인 셈이다.
지난 8월 말부터 지난달 1일까지 이틀간 우비나 두꺼운 옷 등으로 든든히 무장하고 이곳을 찾은 전 세계 맥주 애호가는 5만1000여 명. 여기에 맥주만 7만8000ℓ에 달했다. 한 사람당 1.5ℓ의 맥주를 마신 셈이니 1.5ℓ 페트병에 담긴 콜라의 양만 봐도 축제 기간에 소비된 맥주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짐작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필스너 페스트를 찾았다면 할 일은 오직 하나뿐이다. 맥주에 흠뻑 취해 밤이 깊어질 때까지 그 기분에 취해 일상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면 된다.
플젠스키 프라즈드로이 길을 따라 쭉 설치된 생맥주 부스가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부스 근처에 갈 때마다 알싸름하게 전해지는 맥주의 향기가 코를 자극하고 '카' 하며 곳곳에서 들리는 맥주 넘기는 소리가 절로 지갑을 열게 만든다.
이곳에서는 필스너 우르켈, 감브리너스, 라데가스트, 코젤 등 이 양조장에서 생산하는 맥주를 맛볼 수 있다. 사람들은 한 손에 성인 팔뚝만 한 플라스틱잔, 유리잔 등에 담긴 맥주를 들고 양조장 곳곳을 누볐다. 가격은 500㏄ 맥주 한 잔이 35코루나(체코 화폐 단위)에서 50코루나로 우리 돈으로 2000~3000원 정도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단순히 맥주를 마시고 취하는 일뿐이라면 굳이 시간과 비용을 들여 플젠을 찾을 이유가 없다.
맥주 애호가들이 이곳을 찾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따로 있다. 축제 기간에 효모가 살아있는 상태 그대로 맥주의 맛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필스너 페스트 공장 견학을 안내해준 파벨 프루카 필스너 우르켈 브루어리 마스터는 "효모야말로 필스너 우르켈이 체코를 넘어 전 세계로부터 사랑을 받는 비결"이라고 말했다.
효모를 제거한 맥주가 부드러운 목넘김과 다소 달콤한 맛을 강조한다면 효모가 그대로 보존된 맥주는 좀 더 진한 맛으로 미각을 즐겁게 해준다. 맥주 본연의 맛을 즐기기 위해 필스너 페스트를 찾는 것이다.
이곳에서 맥주를 즐길 때 유념해야 할 부분은 맥주를 따라줄 때 거품이 많다고 불평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체코 사람들은 생맥주에 적당한 거품이 없으면 항의를 한다고 한다.
체코 맥주의 상징이자 자존심과도 같은 하얀 거품은 입천장과 식도를 타고 넘어가며 마시는 이를 금세 한 모금을 더 들이켜게 만든다. 이와 함께 맥주 거품은 맥주 표면이 직접 공기에 닿아 산화되지 않도록 돕는 역할을 하니 그야말로 '일석이조'다.
체코인들의 이 같은 맥주 사랑의 중심에는 1842년 10월 탄생한 필스너 우르켈이 있다. 라거(Lager) 맥주의 효시로 알려진 필스너 우르켈은 이전까지 생산되던 에일(Ale) 맥주를 대신해 세계 맥주의 판도를 바꿔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짙은 색의 에일 맥주 대신 투명한 황금색과 가벼운 맛이 특징인 라거 맥주는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맥주의 70%를 차지하고 있다(2011년 말 기준). 필스너 우르켈의 라거 맥주가 탄생하지 않았다면 지금 마시는 맥주가 어떤 맛인지 쉽게 장담할 수 없는 셈이다.
맥주 문화의 '성지(聖地)'답게 필스너 우르켈은 또 하나의 '맥주 혁명'을 이끌어냈다. 바로 불투명한 나무컵 대신 지금처럼 유리잔으로 마시는 방법이 생겨난 것이다. 유리잔 맥주는 라거의 황금빛에 반한 플젠 시민들이 맥주 색깔을 더욱 잘 감상하면서 미각뿐만 아니라 시각 또한 만족시키기 위해 탄생했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야외 무대에 설치된 밴드 공연과 각양각색의 불꽃놀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록 밴드의 음악과 화려한 불꽃을 즐기다 보니 어느새 자정이 훌쩍 넘었다.
이제는 정말로 축제를 끝마쳐야 할 시간. 사람들은 아쉬움 섞인 얼굴로 삼삼오오 숙소로 떠났다.
축제 다음날 아침 식사를 위해 찾은 호텔 식당에는 세계 곳곳에서 모여든 맥주 애호가들로 북적였다. 이들 모두 피곤함을 숨기지 못했지만 표정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행복해 보였다.
※취재협조=SAB밀러코리아 [플젠(체코) = 정석환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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