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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은 시청 공무원이…피해는 4살 소연이가?

도그데이티비 2012. 10. 22. 11:18

방송 나간 4살 소연이 보셨나요?

너무 귀엽고 예쁘죠.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어린이집에서 지냅니다. 엄마 아빠가 맞벌이하기 때문입니다. 돌 지나고 벌써 3년을 이렇게 보내고 있습니다. 엄마 아빠 퇴근이 늦어질 때면, 소연이는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 등에 업혀 시간을 보내거나, 아니면 원장 선생님이랑 식당에서 같이 자장면을 나눠 먹으면서 기다린다고 합니다. 근데 이런 생활도 며칠 안 남았습니다. 어린이집이 시청에서 갑자기 '운영중지' 통보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당장 다음 달부터 아이 맡길 데가 없어졌습니다. 아이들 30명이 소연이와 같은 처지입니다.

운영중지에는 물론 이유가 있습니다. 어린이집이 영유아보육법을 위반했다는 것입니다. 이 어린이집은 지난해 12월 아이들을 데리고 현재 건물로 이사 왔는데, 시청으로부터 "보육 장소를 변경하겠다"는 내용을 인가받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시청 허락을 안 받고 어린이집을 그냥 옮겨서 잘못이라는 얘기죠. 원래 있던 아이들 30명에 16명을 추가 모집해 어린이집 자리를 옮겼습니다. 운영중지 행정처분은 구리시청 사회복지과에서 내렸습니다. 다음 달 12일부터 한 달 동안 아이를 보육하면 안 됩니다. 절차상 문제없는 행정처분입니다. 절차상 문제가 없어서, 아이들 부모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습니다.

그럼 어린이집은 왜 그곳으로 이사 갔을까요. 시청에서 현재 건물에 어린이집 설립이 가능하다고 했으니까 간 겁니다. 어린이집은 작년 9월 구리시청 건축과로부터 어린이집 운영이 가능하다는 구두 답변을 받았습니다. 해당 건물의 용도가 원래 '사무소'로 돼 있는데, 이걸 노유자 시설인 '어린이집'으로 용도변경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시청 직원이 용도변경 관련 서류도 줬습니다. 어린이집은 이걸 믿고 10월에 중도금과 잔금 치르고, 11월에는 수천만 원 들여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12월에 아이들 데리고 이사했습니다. 근데 갑자기 건물 용도변경이 안 된다, 시청 입장이 180도 바뀐 것입니다. 처음부터 안 된다고 했으면, 건물 계약도 안 하고, 인테리어 공사도 안 하고, 이사도 안 했을 것을. 건축과에 물었습니다.

건물 용도변경은 왜 안 됩니까?



현행 건축법상 절대 안 된다는 게 구리시청 건축과의 답변입니다. 한 필지 안에 불법 건축물이 있으면 용도변경 인허가를 내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린이집 바로 옆 같은 필지 안에는 식당이 하나 있는데, 이 식당이 2층을 불법 증축하고 컨테이너를 놓고 주방을 불법 확장했다는 설명입니다. 어린이집 옆 건물이 불법을 저질렀으니, 이 위반건축물을 없애기 전에는 어린이집도 용도변경이 안 된다, 현행법이 그렇다고 하니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시청 건축과는 취재진에게 건축물대장을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건축물대장에는 정말 '위반건축물'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건축물대장을 차근차근 살펴보니까 뭔가 이상했습니다. 식당을 위반건축물로 지정한 날짜가 2012년 6월 26일로 돼 있던 겁니다. 어린이집은 이미 작년 12월에 이사했는데, 6달이나 지난 뒤에 위반건축물로 지정해놓은 것입니다. 어린이집 원장한테 물어보니까, 임대 계약을 맺었던 작년에도 건물 모습은 똑같았다고 했습니다. 식당을 불법 증축한 건 오래 전 일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건축물대장에 위반건축물이 제때 기재되지 않았다는 건데, 이러면 건물을 계약하는 시민 입장에서는 건축물대장을 아무리 꼼꼼하게 확인해도 위반건축물이 있는지 없는지, 사전에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럼 여기 위반건축물을 적발한 건 언제인가요?



시청 건축과에 다시 물었습니다. 2009년이라고 했습니다. 2009년에 위반건축물 사실을 적발해놓고, 이걸 3년간 건축물대장에 표시를 안 해놓은 것입니다. 건축법 79조를 보면, 지자체는 위반건축물이나 그 땅에 위반 사실을 표시해야 하고, 건축물대장에 그 위반 내용을 적어야 합니다. 이것은 공무원의 직무입니다. 어느 시민이 불법 건축물인줄 모르고 덜컥 샀다가 피해를 입는 황당한 사태를 예방하기 위한 조항입니다. 등기부등본에 아파트가 저당 잡힌 사실이 적혀 있지 않아서, 그걸 모르고 신나게 계약했다가 나중에 알게 됐다고 생각해보면, 이게 얼마나 어이없는 일인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건축물대장에 이걸 3년간 안 적어놓았으니, 식당이 위반건축물이라는 사실은 모두에게 잊혔습니다. 어린이집 건물을 물색한 사람이야 그걸 알 도리가 없고, 단속 주체인 구리시청 건축과의 어느 누구도 그게 위반건축물이라는 걸 몰랐습니다. 심지어, 3년 전 해당 건물을 직접 단속한 공무원도 자신이 적발했던 위반건축물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어린이집 측에 건물 용도변경이 가능하다고 엉터리 답변을 해줬습니다. 황당무계한 행정입니다. 애꿎은 아이들 30명이 어린이집 빈자리를 찾아 헤매야 하는 복잡한 스토리의 퍼즐은 이렇게 맞춰집니다.

시청 건축과는 담당자의 업무 미숙으로 일을 잘못 처리했다고 인정했습니다. 또 건축물대장에 위반건축물이라고 기재하는 행위는 건축물 소유자의 재산권을 상당히 침해하는 것이라 매우 조심스럽다고 했습니다. 많은 경우에 위반건축물이라고 써넣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그래서 3년간 내버려뒀다는 것입니다. 다른 지자체 건축과도 그런 것인지, 건축법 79조는 사문화된 것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위반건축물인지 알지 못해 피해를 입게 되는 시민의 권리는 소중하지 않은 것인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러면서 어린이집 운영중지 처분은 사회복지과 소관이라 어쩔 수 없다고 했습니다. 사회복지과는 당연히 운영중지를 되돌릴 수 없다고 합니다. 아이들 30명과 부모들은 당장 아이 맡길 곳이 없어서 속이 타들어 가는데 속수무책입니다. 분명 공무원의 잘못에서 비롯된 일인데 이걸 소연이와 친구들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박세용 기자chatmzl@sbs.co.kr